아침도 없고 저녁도 없는 삶
서울 부모님 집에서 본부까지는 멀고도 멀었다.
1년 중 가장 추운 1월, 해도 뜨지않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고
악명의 9호선과 1호선을 타고 본부 근처 역에 내리면
오뎅이라도 한 꼬치 사 먹어야 본부 앞으로 가는 버스를 탈 기운이 생겼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서 저녁먹고 씻으면 10시.
바로 잘 준비를 해야 다음날 출근이 가능하다.
아침도 없고 저녁도 없는 삶.
삶의 질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
본부 출근 첫 날.
H와 W는 없었다. 외근이라 했다.
엥? 아 놔
없을거면서 굳이 왜 오늘 출근하라 한 거냐고
Y브랜치 동료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 해서 서운한데 췟.
어쩄든 첫날 옆 부서 선배가 점심을 사줬다.
본부 주변은 편의점도 하나 없이 황량하기만 했는데 한참을 걸어가서 정말 맛 없는 찌개와 밥을 먹었다.
매일 이런걸 먹고 살아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다.
선배: 이팀장 너는 H를 좀 말리면서 일 해
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배: H는 일을 너무 급진적으로 해서 주변에 말이 많아
나: (응?????)
그 선배는 성품이 유하고 주변을 잘 챙기는데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잘 안 하는 사람인데
이런 얘기를 나에게 한다는게 이상했다.
급진적으로 일을 한다... 그게 무슨 말인지... 저는 아직 H 얼굴도 못 봤다구요.
내가 일 할 TFT는 나를 포함해 총 다섯명으로 구성되었다.
다른 입사동기 W,
여기 오기 전까지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던 K, J.
그런데 동기 둘을 제외하면 모두 우리보다 나중에 입사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K는 출생연도의 앞자리가 다를 정도로 나이차이가 많이 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출근 이틀째 드디어 H와 W를 만났다.
H는 나에게 회의를 소집하라고 했다.
H: 우리 팀은 다른 팀과 업무 겹치는 게 많으니까, 각 부서 담당자들 다 불러서 K랑 같이 업무 좀 나누시죠.
다 얘기된 거니까 얼굴 익히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돼요
나는 시키는대로 회의를 소집한다는 문서를 작성했고 인트라넷에 공식적으로 띄웠다.
그리고 K와 함께 회의장소로 갔는데...
본부 첫 회의에서 만난 건 일군의 성난 사람들이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입을 모아
'문서 하나 띡 띄우면 이 바쁜 사람들이 자동으로 회의에 올 수 있는 줄 아냐'
'일정 관련해서 미리 다 의논을 해야 하고, 부서장들에게 협조를 요청해야 하는거다'
'회의 아젠다도 이게 뭐냐. 부서장 간에 업무분장 협의 아직 안 된 걸로 안다.'
선배는 '너는 H 좀 말려가며 일하라니까 내 말은 코구멍으로 들었냐'라고 눈으로 말했다.
나와 K는 영문도 모르고 죄송하다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H가 다 얘기된거라 했는데 ;;; 이게 뭐지???
어찌어찌 마치고 부서로 돌아와 H에게 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설명이 필요했다.
H는 듣더니 웃으면서 '아 그래요?'
가 끝이었다.
응???
ㅆ----ㅔ 함이 몰려온다.
나와 K가 본인의 잘못된 업무지시때문에 개망신을 당했고
계획했던 업무분장도 못하고 왔는데
'아 그래요?' ????????????
저 사람은 팀원을 보호하는게 아니라 총알받이로 쓰는구나.
폭탄 던져놓고 팀원 뒤에 숨는 사람이구나.
일단 말단 팀원을 앞세워 찔러보고, 뚫리면 '내 성과'고,
욕먹으면 '니 팔자'라고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 날 부터 '브랜치 돌아간다고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