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 때문에
동료를 위험에 빠뜨려요

그리고 그 동료를 외면해요

by 닥터맥리


어느 월요일이었다.

H는 주간 부서장 회의에 다녀온 참이었다.

우리를 다 모이라 하더니 큰일 났다며 호들갑을 (또) 떨었다.


H: 하--- 회장님이 이상한 말을 하시네

W: 뭔데 응? 뭔데요??

H: 그게 말이야...


말인즉슨, 회장님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운영국장과 기획부장의 뜻에 따라

우리 팀과 다른 팀의 업무분장을 다시 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H가 맡았었고 지금은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타깃이었다.


W: 어머어머 어떻게요?!?!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하셨지? 그럼 우리 이팀장님은 어떡해요???


으이띠. 생각해 주는 척하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게 바로 이런 거다.


H: 아무래도 운영국장이 주말에 회장님 따로 만난 것 같아.

따로 만나서 또 내 욕하면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협잡질했겠지.


사방이 적이다.

호시탐탐 어떻게든 팀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있는 건 확실하다.

이때는 몰랐다.

그 세력이 왜 우리 팀을 박살을 못 내서 안달인지.

그저 H와 W의 말대로 그냥 시기질투라고 생각했다.


우리 팀은 앞서 설명했듯이 TFT였다.

사업목표를 달성하면 해체되는 팀.

사업목표는 정부에서 ‘미래 먹거리’로 밀기 시작한 산업(A라 하겠다)에 특화된 브랜치를 설립하고

정상적으로 운영되게끔 세팅하는 것이었다.


A에 관련해서 사업을 진행하는 브랜치들이 이미 있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사업 중의 하나이지 그것만 하는 브랜치는 없었다.

그 산업에만 특화된 브랜치를 설립해 관련 정부 부처에 어필해서

예산 등 금전적 이익과 함께, 이 브랜치의 모델을 다른 회사에 판매까지 해보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 사업목표는 H가 기획한 게 아니고 정부의 모 인사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회장님의 지시였다.


사업목적만 봐도 다른 팀, 브랜치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브랜치를 무한정 확대할 수는 없으니 기존에 있던 사업을 정리하고 예산을 나눠야

(과거에는 H가 맡았었고 지금은 내가 담당하고 있는, 타깃이 된 그 업무가 바로 이것이었다)

신규 브랜치 설립이 가능하니 기존 멤버들은 자기들 밥그릇을 뺏긴다고 생각했다.

본부의 다른 팀들은 우리 팀이 하는 일이 회장님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으니 무조건 싫어했다.

난 이상의 이유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이때 W가 정말 희한한 소리를 했다.

W: 이럴 거면 그냥 우리 팀 해체하라고 해요.

다들 그렇게 눈엣가시고 싫으면 해체하고 자기들끼리 잘해보라 해요.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어떻게 올라온 본부인데 해체라니, 나랑 K, J, 그냥 이대로 브랜치 돌아가란 말인가?

저렇게 함부로 ‘해체’를 입에 올리다니 아무리 동기지만 저건 용서가 안되는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W는 입을 다물었다.

H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계산기가 팽팽 돌아가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외근 중인 J에게 들어오라 했다.


H: 다 같이 회장님 만나러 가죠. 가서 절대로 업무 못 준다고 얘기하고 오죠.


J는 회장님과 미팅하기로 한 시간에 맞춰 헐레벌떡 들어왔다.

회장실로 팀 전체가 들어가 한 명씩 돌아가며 그 업무를 왜 우리 팀에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W의 차례가 되자 억울해 죽겠다는 앓는 소리가 시작됐다.


W: 회장님 이러실 거면 차라리 팀 해체하시죠.

저희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회장님 의중 받들어서 다 잘해보자고 하는 일인데

저는 이렇게는 일 못 합니다.


두둥

하 저 주둥아리 진짜… 뭐라 쳐 씨부리쌌노


회장: W팀장, 왜 그래. 진정해요. 내가 팀 해체시키려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


난 그 이후로 아무 말도 안 들렸고 해체되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만 머릿속에 떠돌았다.

J가 작은 소리로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하.........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H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우린 결국 소득 없이 회장실을 나왔다.


순간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여윽시 이번에도 그는 팀원들을 이용했다.

나와 J, K는 "우리는 한 팀이다"라는 가스라이팅에 속았고

H는 팀원을 회장실로 끌고 들어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시켰으며

W라는 광대를 앞세워 판을 흔들었다.

그리고 본인은 불쌍한 피해자인양 하며 뒤에 숨었다.


H와 W는 팀을 지키고 싶었던 게 아니라

우리를 인질 삼아 자신들의 왕국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사방의 적보다 무서운 건

함께 싸우는 척하며 언제든 나를 절벽으로 밀 준비가 된 소시오패스 동료들이었다.


아, 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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