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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3. 베토벤을 빼고도? 정말?

- 유신애, 《베토벤 빼고 클래식》

by 김정수

B43. 베토벤을 빼고도? 정말? / 《베토벤 빼고 클래식》 - 유신애 지음, 1458music

이 책 참 근사합니다. 내용과 형식이 이토록 예쁘게 조화를 이룬 책을 언제 또 만난 적이 있었는지, 얼른 기억나지 않아요.

제목도 참 근사합니다. 세상에, ‘베토벤 빼고 클래식’이라니요? 책을 읽기 전에는 두 가지 의미로 새겨집니다.

하나는, 베토벤을 빼고 클래식 음악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반어법(反語法)’이라고 하면 될까요. 당연합니다. 클래식 음악에서 악성 베토벤을 빼놓는다면, 그것은 ‘앙꼬(팥소) 없는 찐빵’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영화 〈예스터데이〉(2019, 대니 보일)에서 벌어졌던 저 ‘비틀즈 없는 세상’ 그 이상이 아닐까요.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적어도 저는 비틀즈 없는 세상에서는 살 수 있어도 베토벤 없는 세상에서는 못 살 것 같으니까요.

또 하나는, 베토벤을 빼고도 클래식 음악에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이 책의 제목이 겨냥하는 것이 이 두 번째 의미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가 쉽게 파악된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무리 읽어도 도대체 그 작의(作意)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글들, 책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습니다’체로 된 문장 자체가 워낙 쉽고 친절해서 부담 없이 술술 읽힙니다.

이 책에는 그렇듯 베토벤을 빼고도 할 수 있는 많은 이야깃거리에 속하는 열다섯 명―맨 마지막 챕터의 유피미아 앨런을 포함하면 열여섯 명―의 작곡가들과 그들의 대표적인 음악들이 일목요연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감춰져 있던 클래식 천재들의 이야기’인 것은 그래서입니다.

무엇보다도 결코 길지 않은 분량에 우리가 깊고 상세하게는 몰랐던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간략하고 효율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또, 각 챕터마다 해당 이야기 속의 음악들을, QR코드를 스캔함으로써, 책을 읽어나감과 동시에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본문 편집을 해놓았다는 것도 눈에 띄는 독특한 장점입니다.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음악을 듣는 시간과 해당 챕터의 글을 읽는 시간이 얼추 맞아떨어진다는 것도 참 재미있고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날마다 한 챕터씩 그렇게 읽어나가면 보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는데, 제가 이 책을 한꺼번에 읽지 않은 것은 그 체험이 하도 즐거워서 그 즐거움의 시간을 연장해서 누리고픈 까닭에서였습니다.

물론 기왕에 알고 있는 작곡가도 있었지만, 체르니와 아농(하농)과 바이어(바이엘)를 다룬 ‘피아노 학원 3대 작곡가’ 편은 판소리의 귀명창처럼 그저 듣는 데만 익숙해져 있었던 제게는 매우 새롭고도 흥미로운 정보였습니다.

더욱이 저자가 윤이상을 빼놓지 않은 것도 참 귀하게 여겨지고, 무엇보다도 탱고의 피아졸라를 이 책에 포함시킨 저자의 안목이 퍽이나 신선합니다.

‘스페셜 게스트’로 맨 마지막을 장식한 ‘젓가락 행진곡’의 유피미아 앨런 편도 저로서는 소중한 ‘허스토리(Herstory)’였지요.

클래식 관련 음악 서적들이, 요즘은 기류가 조금 달라진 느낌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무겁고 진지한 편인데, 근래 이토록 ‘즐겁게’ 읽어본 책이 또 있었던가, 싶습니다. 클래식 관련 서적을 제외하고도 그렇습니다.

학생들이나 클래식 음악 초심자, 또는 입문자분들은 물론이고, 저처럼 ‘베토벤을 빼고는’ 클래식 음악을 생각할 줄 모르는, ‘귀만 밝은’ 애호가분들께도 권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아, 몇몇 곡들은 QR코드를 통해서 저자의 직접 연주로 들어볼 수 있다는 점도 이채롭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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