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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Oct 05. 2024

B20. 새로운 청중의 탄생, 새로운 음악의 탄생

  - 와타나베 히로시, 《청중의 탄생》

B20. 새로운 청중의 탄생, 새로운 음악의 탄생 / 《청중의 탄생》 - 와타나베 히로시 지음, 윤대석 옮김, 강

   음악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작곡가나 연주가를 떠올리지, 청중을 먼저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청중은 음악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음악을 두고 어떤 논의를 할 때 적어도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려나 있지요.

   이는 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책 자체나 그 책을 쓴 저자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나누기는 할망정 독자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경우는 드물지요.

   물론 독자나 청중이나 학문의 차원에서 연구대상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저도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흔치는 않은 느낌입니다.

   《청중의 탄생》은 바로 그 청중, 특히 클래식 음악회의 청중에 대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할 기회가 드문 진지한 발언을 하는 책이라 몹시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먼저 밀폐된 공간에서 객석의 불을 끄고 온전히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나 독주자에 조명을 집중한 가운데 청중이 숨죽인 채 음악을 듣는 저 ‘집중청취’라는 연주회 또는 음악회의 관행이 19세기 이후 시대 변화에 발맞춰 생겨난 특수한 문화라는 지적을 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음악이 처음부터 그토록 진지한 감상의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의 시대까지만 해도 음악은 그렇게 정중히 대접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19세기 이전 시대의 음악회장은 청중들의 잡담과 다양한 형태의 사교 행위로 ‘소란스러웠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작곡가들 스스로조차 자기 음악이 진지한 감상의 대상이라는 의식 없이 곡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음악은 명실상부한 예술이 아니었고, 음악가는 한갓 기능인이지 예술가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아니, 어쩌면 예술과 예술가라는 개념 자체가 달랐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베토벤 이후, 프랑스 대혁명 이후 ‘개인’이 중요해지면서 청중의 성격이 한 차례 크게 달라졌고, 현대로 들어와서 포스트모던한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청중의 성격이 다시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입니다.

   심지어 저자는 이 변화를 ‘변질’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청중은 음악을 다시 진지하게 듣지 않는, 곧 진지하게 대접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음악회에서 청중이 협주곡이나 교향곡을 들을 때 전체 음악이 아니라, 1악장이 끝나자마자 박수를 치는 관행이 늘고 있는 현상도 그 일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것은 19세기 이전처럼 음악을 하찮게 여기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청중이 스스로 얼마나 자유롭게 즐기느냐가 중요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대중음악 콘서트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는 문제지요. 가수의 입에서 나오는 한 음 한 음을 집중해서 들으려고 콘서트 내내 숨죽인 채 얌전히 앉아 있는 청중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변화는 청중 쪽에서 볼 때 어쩌면 해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이러한 청중의 변화와 관련하여 말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저는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는 말러의 음악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말러 음악의 구조는 너무 복잡해서 무엇과 무엇이 대립 관계에 있는지,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전환되는지, 전체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조금 들어서는 확실히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말러 음악의 청중은 이해하려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고 ‘눈앞에서 차례차례 전개되어 가는 다양한 음의 이미지에 몸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청중의 출현을 저자는 ‘경박한 청중의 탄생’이라고 명명합니다. 이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확실히 요즘의 클래식 음악회를 가보면 청중들은 예전처럼 다소곳하게 ‘참고 있지’ 않습니다. 그 순간의 자기 감정, 기분, 느낌을 표현하는 데 점점 더 거리낌이 없어져 갑니다. 연주자들도 그에 발맞춰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추세고요.

   이것이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청중이 음악의 변화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음악도 청중의 변화와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는 자각이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듯 독자에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넉넉하다는 것이 제 독후감입니다.

   다음 시대에는 또 어떤 성격의 청중이 탄생할까요? 궁금합니다.

   저자의 생각을 따르면, 새로운 청중의 탄생은 새로운 음악의 탄생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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