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셸 공드리, 〈비카인드 리와인드〉 & 난니 모레티, 〈악어〉
C30. 저예산, 책임면제의 즐거움 – 미셸 공드리, 〈비카인드 리와인드〉(2009) & 난니 모레티, 〈악어〉(2006)
신산스러움 vs 즐거움
난니 모레띠의 〈악어〉를 일종의 정치영화로 새겨 읽는 것은 어쩌면 가장 일반적인 독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제작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을 날카롭게 꼬집는 내용이 줄줄이 엮여 나오니까요.
하지만 꼭 ‘〈악어〉는 코미디도 아니고, 정치영화도 아니고, 단지 영화일 뿐’이라는 감독 자신의 논평이 아니더라도, 저는 일단 〈악어〉를 ‘영화 만들기’, 그것도 ‘저예산 영화 만들기의 신산스러움’에 대하여 어떤 발언을 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서 전하려는 메시지야 무엇이 되었든, 분명 이 영화의 몸통을 이루는 것은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바로 이 점이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한편, 미셸 공드리의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정반대로 저예산 영화 만들기의 ‘즐거움’을 대놓고 주장하는 영화라서 〈악어〉 이상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아니, 그 즐거움을 만천하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너무나 확연하여 도대체 거기에 무슨 토를 달 핑곗거리를 떠올리기가 힘겨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저는 이 영화에서 그 밖의 다른 것은 읽어내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다고까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비카인드 리와인드〉에는 이제는 거의 확실하게 사양길로 접어든 비디오 가게에 대한 추억 또는 향수가 듬뿍 담겨 있어, 저처럼 비디오 세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분들이라면 도저히 외면할 길이 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극장이나 비디오 따위가 아니라, 그 밖의 워낙 다양한 매체들을 통하여 영화를 보는 일에 매우 익숙한 지금 세대는 언뜻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는 일련의 상황들이 불가항력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하면 될까요.
적정한 제작비?
하지만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저예산 영화 만들기의 ‘즐거움’과 ‘신산스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저예산이라는 말 자체에 시비를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든 탓입니다.
우선, ‘적정한 제작비’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한 편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적정한 제작비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이는 제가 예전부터 품어왔던 의문의 하나입니다. ‘과연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가장 적정한 제작비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그 적정함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가는 둘째 문제로 치더라도, 그 적정함이라는 것 자체가 있기는 한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있다는 쪽입니다.
돈이 드는 세상의 모든 일에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가장 알맞은 비용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비용을 얼마나 정확하게 계산해 내느냐가 그 일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돈이 모자라서 마무리를 제대로 못 하는 불상사도 없고, 돈이 넘쳐서 불필요하게 낭비하지도 않으려면, 아주 이상적인 적정 비용을 산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지 않을까요.
저예산의 개념
영화도 돈이 드는 일의 하나이니, 분명 적정한 제작비라는 것이 존재하겠지요.
문제는 그 비용을 정확히 산출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이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될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써도 줄지 않을 만큼 예산이 무한정 준비되어 있는 행복한 사태 같은 것은 없을 터이니까요.
그렇다면 저예산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예산이란 초과 예산과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는 개념이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저예산’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적은 예산’일 것입니다. 이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적정한 예산’이라는 것이 있다는 전제를 두고 이야기하자면, ‘저예산’은 더 들여야 하는 비용을 억지로 줄였다는 뜻이 되고 맙니다.
사업을 이런 식으로 했다가는 신용을 잃기 십상이겠지요.
예컨대, 적정 예산이 10억인 어떤 물품의 생산에 5억만 들였다고 치면, 그 물품은 불량품이 될 것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물론 9억쯤 들여 생산했다면 1억을 아낀 셈이니, 비용 절감 차원에서 칭찬할 만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예산 영화’란 ‘불량품 영화’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개념으로 ‘저예산 영화’라는 말을 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여기에는 얼마간 개념의 혼동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적정 예산이 10억인 영화를 5억으로 만든 경우에도 저예산이라는 말을 쓰고, 처음부터 적정 예산이 5억인 영화를 5억 들여 만든 경우에도 저예산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5억은 그냥 편의상 보기로 든 액수일 뿐입니다. 저예산의 기준도 세월이 흐르면서 자꾸 바뀌니까요. 대체로 어느 시점의 평균 제작비를 기준으로 그에 많이 못 미치면 저예산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저예산 영화’와 ‘독립영화’는 그 개념이 서로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예산’이라는 말의 뜻을 곧이곧대로 ‘적은 예산’으로 풀이한다면, 적정 예산이 10억짜리인 영화를 5억만 들여 만든 경우나, 처음부터 적정 예산이 5억인 영화를 5억 들여 만든 경우나 모두 저예산이 맞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자는 5억이라는 돈을 절약하는 데 성공한 셈이고, 후자는 평균 제작비(아마도!)를 많이 밑도는 비용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낸 셈이니, ‘저예산’이라고 불러도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즐거움의 정체
하지만 이렇게만 따지면 ‘저예산’이란 어느 쪽에서 보아도 그저 미덕인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영화계에서 저예산이라는 말을 칭찬하는 뜻으로 쓰는 때는 주로 그 저예산으로 양질의 예술영화, 또는 양질의 독립영화를 만들었을 때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저예산이라도 그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 자체가 형편없는 수준이라면 결코 대놓고 칭찬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점에서는 〈악어〉보다 〈비카인드 리와인드〉 쪽이 훨씬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이 경우는 저예산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초저예산입니다. 아니, 차라리 무예산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뿐더러, 영화를 만드는 데 동원하는 일련의 각종 장비는 또 얼마나 허접합니까.
한데, 아주 힘겨워 보이는 〈악어〉의 저예산 영화 제작 과정에 견주면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영화 제작 과정은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으리만치 그저 신나고 즐겁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이 즐거움은 어디에서 빚어지는 것일까요? 아니, 이 즐거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책임의 면제
물론 이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예산의 가장 큰 장점은 그 결과인 작품, 또는 그 결과인 작품이 빚어낼 차후의 어떤 상황들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돈을 많이 들여서 만들면 책임도 늘어납니다. 요컨대 100억을 들여서 만든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용(돈)’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란 가혹하리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예산 영화는 저예산인 만큼 흥행의 강박에서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자유롭습니다. 제작비가 적으면 적을수록 져야 할 책임도 그만큼 줄어든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즐거움이 〈악어〉의 신산스러움을 압도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책임의 면제―.
물론 100퍼센트의 완전한 면제는 아니지만, 잭 블랙과 모스 데프의 작업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누리는 즐거움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한없이 부러운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그렇듯 자본에 대한, 또는 자본으로 말미암은 강박이 거의 없이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영화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한 번쯤 인생의 한 시기를 영화 만드는 데 바치고 싶지 않을까요.
심지어 그들은 단순히 자본에 대한 책임에서만이 아니라, 예술적인 야심에서도 자유롭습니다. 그 결과 어떤 수준의 영화가 나오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모르긴 몰라도 예술적 성취에 대한 야심은 저예산의 가장 중요한 강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요. 지금의 영화 시장에서 예술적 성취가 없는 저예산 영화의 존재근거란 아무래도 상당히 희박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그들은 바로 이 예술적 성취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롭습니다. 여기에 그들이 누리는 즐거움의 또 한 축이 놓여 있습니다.
자본과 예술적 성취에 대한 강박 없이, 그저 스스로 만들고 싶은 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상태―.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영화를 너무너무 좋아하고, 그래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망에 한 번이라도 시달려 본 적이 있는 모든 사람의 이상향이 아닐까요.
곧, 이것이 바로 〈악어〉보다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훨씬 더 즐거운 이유입니다.
비록 영화 속에서일지언정 그렇게나마 그들이 누린 그 소박하고도 원초적인 즐거움이 저한테는 참 귀하고도 부럽게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