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08.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07. 백작 부인
사제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기주장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 연약하게만 보이는 사제가 거듭 백작의 집을 방문하는 모습에서는 마침내 어떤 집요한 근성마저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방문에서 사제는 백작이 아니라, 백작의 부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 대목의 연출과 편집, 그리고 미장센이 또 절묘합니다.
먼저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화면에는 창밖을 근심스럽게 살피는 루이즈 양 뒤로 백작의 모습이 보입니다.
당연히 밀회가 의심되는 장면인데, 감독은 이 정황의 심리적 긴장감을 다음과 같은 사제의 독백 한마디로 간단하면서도 아주 효과적으로 처리하고 넘어갑니다.
‘하인이 약간 늦게 나왔다.’
왜 ‘제때’가 아니고 ‘약간 늦게’일까요?
하여튼 ‘약간 늦게’ 문을 열어준 하인의 안내를 받고 백작의 집 안으로 들어간 사제는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앉아 있는 백작 부인과 마주칩니다.
욕망이나 생기 따위가 몽땅 탈색된 듯한 부인의 얼굴은 역시 행복이나 평안과는 사뭇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부인은 마침 죽은 아들의 사진을 보는 중이었습니다.
거기에 사제의 독백이 얹힙니다.
‘그녀는 여전히 세상 떠난 아들을 못 잊고 있다.’
‘여전히’라고 하는 것을 보면, 역시 사제는 아직 인생 경험이 모자란 젊은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부모는 먼저 세상 떠난 자식을 제 가슴속에 묻고 평생, 아니, 단 한순간도 잊지 못하는 법인데, 그것까지 헤아리려면 사제는 아직 좀 더 세월의 풍파를 겪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의 신이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허락한다면요.
뿐만이 아니라,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만의 독특한 독백의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먼저 사제의 독백이 있습니다.
‘백작 부인이 나한테로 느릿느릿 다가오더니,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하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백작 부인이 말없이 사제에게 손짓으로 앉으라고 의자를 가리켜 보이는 장면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동이 먼저 있고, 그 행동에 대한 부연 설명이 내레이션으로 동시에 또는 나중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연 설명이 먼저 있고 나서 그 설명의 내용에 해당하는 행동이 뒤따르는 식인 것입니다.
거꾸로지요.
하지만 거의 불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한 독백을 이렇게 남발하는 방식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에 이상하리만큼 미학적이고도 심리적인 긴장감을 부여한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백작부인과 사제가 나누기 시작하는 대화에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옵니다.
먼저 백작 부인이 묻습니다. 핵심을 건드리는 질문입니다.
“신부님, 작은 교구인데도 신도들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민이 참 많으시지요?”
사제도 핵심을 피하지 않는 대답으로 그 질문을 간단히 받아넘깁니다.
“그래도 지도에서는 작은 곳이지요.”
백작 부인의 말이 맞다고 자신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뭔가 대화가 이어지나 싶기가 무섭게 갑자기 사제한테 기다렸다는 듯 복통이 엄습합니다. 하도 극심해서 사제는 그 고통을 백작 부인 앞인데도 도저히 숨기지 못합니다.
결국 사제는 부인의 부축을 받으며 그곳을 떠나지요. 사제는 또 일기를 씁니다.
‘벌써 6개월 동안이나 지속되는 고통이다.’
마침내 사제는 의사를 찾아갑니다.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