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기다림_11

- 11. 아내는 남편을 걱정한다

by 김정수

11. 아내는 남편을 걱정한다

몸은 좀 어때? 아내의 문자다. 지금 내가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휴대폰뿐이다. 통화는 하지 않는다. 베갯머리에 놓아둔 휴대폰이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면 나는 그걸 집어 들고 화면에 뜨는 번호만 확인한 다음 그냥 내려놓는다. 진동은 이내 멈추기도 하고, 하염없이 계속되기도 한다. 나는 참을성 있게 버틴다. 받고 싶지 않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매가리가 없고, 약간 쉰 것처럼 갈라져 있다. 온전한 내 목소리가 아니다. 이런 목소리로 말하기 싫다. 상대가 누구든 이런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다. 말하는 동안 우울해질 것 같다. 아내는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문자만 보낸다.

진동이 이어지는 동안 생각한다. 정 궁금하면 문자를 보내겠지. 되도록 답은 하려고 애쓴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간격을 둔다. 우선은 내 몸이 힘들고, 무엇보다도 소통에 대한 욕망이 나한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인내심이 있는 사람, 내가 쉼표를 찍듯 짐짓 놓아두는 그 간격을 견딜 뜻이 있는 사람하고만 문자를 주고받는다. 한쪽 손만 쓰면 된다. 누워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짧은 동안에도 지구의 중력은 가차 없이 내 손을 밑으로 잡아당긴다. 팔이 무겁다. 오래는 못 한다. 최소한의 문장을 궁리한다. 이윽고 자판을 누르기 시작한다.

몸은 좀 어때? 아내의 문자도 짧다. 읽기 쉽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아내한테 보낼 문장을 떠올린다. 괜찮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거짓말이다. 나아지는 느낌은 없다. 아니, 나아지는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 더 나빠지는 느낌이 없을 뿐이다. 현상 유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정확한 진술이다.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끝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 걱정하지 마. 그래 놓고 정작 자판을 누를 때는 그 말을 뺀다. 걱정은 좀 해도 되지 않겠는가 싶다. 남편이 아픈데 아내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게 슬며시 가학적인 심정이 된다.

아내는 나를 걱정하고 있을까. 걱정이 되기는 할까. 아내는 감정표현의 수위가 높지 않다. 자기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데 서투르다. 또는, 그러는 걸 싫어한다고 말해야 옳을까. 어쨌든 익숙하지는 않다. 그 탓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연애시절 내가 늘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맸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 여자가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싫지 않은 정도인지. 여러 가지 정황을 엄밀하게 따져보면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했건만, 대놓고 좋아한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미진한 구석이 반드시 남았다. 그러니까 우리 연애는 그걸 기어이 확인하고 마침내 움직일 수 없도록 단단히 확정하려 무던히도 애쓰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적어도 내 쪽에서는 그랬다.

아내는 울지 않았다. 어쨌거나 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아내는 놀라우리만큼 침착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나를 넌지시 부탁했다. 그런 셈속과 과단성이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아내는 담담하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모습만으로는 남편에 대해서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낙천적인 여자였나? 정말 그럴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남편을 걱정하게 마련이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아무리 못된 남편이라도, 그가 남편인 이상 아내는 걱정을 하게 마련이다. 걱정의 내용은 사람에 따라 다를지 몰라도 걱정을 한다는 사실 자체만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그걸 어머니한테서 똑똑히 확인한 바가 있다.

초등학생 때였다. 한밤중. 가족 모두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어 있었다. 그때 우리 집에는 방이 하나 더 있었는데, 굳이 우리는 죄다 안방에 모여서 잠을 잤다. 겨울이었다. 외풍이 심했다. 방방이 때야 하는 연탄을 아끼고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밤을 보내려면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어울려 자는 수밖에 없었다. 체온의 낭비를 줄여야 했다. 갑자기 아버지가 경련을 일으켰다. 간질 발작을 하는 것처럼 듣기 거북한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온몸을 비틀었다. 눈의 흰자위가 드러났다. 나는 어머니의 비명을 듣고 잠에서 깼다. 어쩌면 아버지의 심상치 않은 기척에 이미 거지반 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불을 켜고 일어나 앉아 곁에 누운 아버지를 뭐라고 소리치며 마구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다급한 손길, 기겁한 목소리였다. 무슨 말인지 똑똑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경련과 신음 소리는 계속되었다. 무슨 사태인지 얼른 파악이 되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일어나 앉아 두 분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렀다.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벌써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은 채였다. 물이라도 떠오려나보다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발소리는 부엌 쪽을 향하지 않았다.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소리,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소리. 마침내 대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 그제야 알았다.

우리 집 바로 뒤에는 소아과와 내과를 함께 보는 개인병원이 있었다. 나는 겁이 난 나머지 재빨리 일어나 마루로 나갔다. 동생들이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살필 겨를이 없었다. 어머니 대신 내가 계속 아버지를 흔들어 깨워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감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맨발로 밟고 선 마룻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발바닥에서부터 한겨울의 냉기가 두 다리를 타고 정수리까지 삽시간에 치솟아 올랐다.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나는 내복바람으로 오들오들 떨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머니가 병원의 굳게 닫힌 접이식 철문을 두드리며 외치는 소리가 담 너머에서 들려왔다.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지나다니는 차량도 한 대 없을 고요한 한밤중에 어머니가 있는 힘껏 내지르는 새된 목소리는 얼어붙은 밤공기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어머니는 거두절미하고 다짜고짜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소리만은 또렷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긴 다른 말은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공황 상태였다. 고막이 아팠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다.

이상하게도 그다음 상황은 떠오르지 않는다. 병원에서 의사가 달려와 손을 썼는지, 그럴 필요도 없이 아버지가 저절로 회복이 되었는지. 도대체 그 사태가 어떻게 수습되었는지, 마치 칼로 도려낸 것처럼 그 부분이 휑하다. 다음은 멀쩡한 얼굴로 일어나 앉은 아버지가 평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모습이다. 어쩌면 슬쩍 웃음을 지었던 것도 같다. 웃는 얼굴의 아버지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게 처음이다. 어쩌면 실은 웃음이 아니었는데도 내가 짐짓 그걸 웃음으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웃음은 그만큼 나한테 낯선 것이었다. 아버지는 웃을 줄을 모르는,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언제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찌푸린 양미간에서는 깊은 주름이 사라질 줄 몰랐다. 나는 아버지가 늘 우울하거나 화가 나 있다고 생각했다. 나 때문이라는 확증은 없었는데도 나는 늘 죄책감에 젖어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어둡고 찌푸린 얼굴을 한 아버지가 입까지 완강하게 꽉 다물고 있었으니, 우리 집 분위기는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마조마하고 위태위태했다. 신경의 긴장. 아버지는 일종의 시한폭탄이었다. 반드시 폭발했다.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예측하기 힘들었지만, 끝내 폭발하지 않고 넘어가는 일은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침묵이 깊고 오랠수록 폭발의 강도도 높았다. 자주 있더라도 작은 폭발이 차라리 나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침묵은 흔히 질기도록 오래 계속되었다. 숨이 막혔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곧잘 우리 집 지붕 위에 드리워진 검은 구름의 환영을 보곤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걷어낼 수 없는 두꺼운 구름. 아무리 간절히 소망해도 떠나 주지 않는 원망스러운 구름. 들이마시면 내 몸이 상할 게 틀림없는 나쁜 공기로 가득 찬 집 안. 그 속으로 들어가기가 정말 싫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 증세가 심해지면 나는 일부러 대문 앞을 그냥 지나쳐 집 둘레를 몇 바퀴 돌면서 시간을 끌었다. 마귀의 소굴로 들어가야만 하는 딱한 신세. 그러나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그 시절 나는 자주 아팠다. 아프면 어김없이 열이 났다. 학교에 결석도 많이 했다. 나는 몸이 약했다. 처음부터 약하게 태어났는지, 아니면 자라면서 부실한 섭생과 환경으로 차츰 약해진 것인지, 나는 이런저런 잔병치레가 많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 몸살을 앓았고, 수시로 배탈 설사에 시달렸다. 그렇게 앓아누울 때마다 나는 우리 집 바로 뒤에 있는 그 소아과 의원 신세를 지곤 했다. 의사는 어머니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였다. 키나 체구는 어머니와 비슷했고, 눈은 더 가늘었다. 목소리가 어머니보다 한 옥타브쯤 낮아서, 그걸 듣고 있노라면 집안의 마음씨 고운 아주머니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청진기를 내 가슴에 갖다 대고, 겨드랑이에 수은 체온계를 끼워 넣고, 나무 막대로 내 혀를 눌러 목의 상태를 살펴보고, 때로 엉덩이 이쪽저쪽에 주사를 놓는 손길 하나하나가 친절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능란했다.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을 때는 그 가운데 몇 가지를 간호사한테 맡겼지만, 한가로울 때는 모든 것을 알뜰하게 손수 챙겨주었다. 병원이 집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파서 열이 나면 먼 데까지 걸어가기가 힘겨웠으니까.

약 먹는 일은 고역이었다. 어머니는 종이에 담긴 하얀 가루약을 설탕과 함께 물에 타서 숟가락으로 떠먹였다. 약을 삼키려고 힘겹게 일어나 앉아서 나는 어머니가 숟가락에 담긴 것을 새끼손가락으로 콕콕 눌러 살뜰하게 비비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설탕을 넣었는데도 혀에 닿는 약은 몹시 썼다. 나는 곧잘 구역질을 했다. 더러는 약을 삼키자마자, 더러는 미처 삼키기도 전에 토해버렸다. 어머니는 핀잔하지 않았다. 묵묵히 다음 약봉지를 열어 하얀 가루를 다시 숟가락에 부었다. 한 번 토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다시 약 먹기가 한결 수월했다. 증세가 심각해서 열이 아주 높을 때면 의사는 약 먹는 시간을 식후 삼십 분이 아니라 네 시간 간격으로 지정해 주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자다가도 시간 맞춰 일어나 약을 먹어야 했다. 그 시절 내가 밥 먹고 학교 다니는 것 빼고 가장 익숙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내는 되도록 얼굴을 내밀지 않으려 한다. 나를 여기로 보내놓고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과 내가 다시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걸까. 그런 의도가 느껴진다. 물론 나 혼자만의 넘겨짚기일 뿐이다. 실제로 아내는 바쁘다. 일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돌보아야 한다. 집에도 이것저것 살펴야 할 게 많다.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이따금 섭섭한 마음이 된다. 하지만 분명히 걱정은 할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걱정했듯이. 그게 아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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