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기다림_15

- 15. 내 남동생, 두 번째

by 김정수

15. 내 남동생, 두 번째

동생이 밥 먹는 소리다. 나는 감았던 눈을 다시 뜬다. 그새 깜박 잠이 들었던 것도 같다. 의식의 끈을 힘껏 움켜쥐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으며,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언제든 잠들 수 있다. 누가 와 있건 상관없다. 의식하지 않는다. 신기하다. 깊은 체념 상태. 온몸이 거기에 맞춤하니 적응하고 있다. 신경계가 온통 마비되어 아주 감각이 무딘 생명체가 된 것 같다.

동생이 있는 쪽을 보지는 않고 소리만 듣는다. 창밖도 어둑해졌다. 공기가 아까보다 조금 더 후텁지근하다. 된장찌개 냄새가 진하다. 입안에 군침이 돈다. 하지만 내가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어머니의 된장찌개는 짜다. 족발집에서 장국을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해 가며 같은 솥에서 그걸 몇 번이고 거듭 끓이듯이 어머니의 낡고 투박한 뚝배기에는 된장찌개가 끊일 날이 없었다. 아직 남은 된장찌개에 새로 된장을 넣고 다시 끓인다. 파와 고추와 무와 호박을 더 썰어 넣고 두부도 새로 집어넣는다. 그렇게 거듭 끓인 된장찌개는 어머니만의 손맛이 깊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다. 짠맛이 하도 진해서 그걸 떠먹을 때 가끔은 짜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그저 짜다고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한 숟갈 입속에 떠 넣으면, 사냥꾼의 총소리에 놀란 기러기 떼가 아직 다 얼어붙지는 않은 차디찬 겨울 강물을 박차고 일제히 창공으로 날아오르듯, 잠자던 온몸의 감각이 요란하게 아우성치며 한순간에 되살아난다. 속이 다 후련해진다. 참 많이도 먹었다. 거의 날마다 먹었던 것 같다. 집 안에는 언제나 된장찌개 냄새가 감돌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된장찌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된장찌개를 끓이든 안 끓이든 냄새는 언제나 집 안 곳곳에 속속들이 스며든 채 질기도록 오래 머물러 있었다. 어쩌다 된장찌개 냄새가 나지 않거나 여느 때만큼 진하지 않으면 나는 방과 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도 집에 온 기분이 나지 않고 어딘가 모르게 서먹했다.

어쩌면 그런 식습관이 내 몸을 조금은 더 빨리 망가뜨렸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소금은 내 몸에 치명적인 독이나 마찬가지다. 내 콩팥은 지금 일정량 이상의 염분을 처리해 낼 능력이 없다. 나는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어머니의 진짜배기 된장찌개를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 의사는 짜게 먹지 말라고 나한테 확실히 경고했다. 폐가 나빠진 사람한테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것이나, 간에 문제가 생긴 사람한테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무게를 지닌 경고였다. 알 수 있었다. 받아들여야 했다. 나 같은 환자를 상대로 의사는 어쩌면 협박이라도 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심신이 잔뜩 연약해진 환자한테 차마 대놓고 그럴 수는 없으니, 수위를 조금 낮춰 경고 정도로 조절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마음 자락을 알아차리는 환자가 진짜 환자다. 다시 말하면 환자가 그 마음 자락을 알아차리도록 충분한 경고를 해주는 의사가 진짜 의사다. 나는 그 경고를 받아들였다.

동생이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있다. 기분이 묘하다, 혈육이 밥 먹는 소리를 귀로만 듣는 것은. 그렇다. 어쨌거나 나는 동생의 형이다. 인생의 몇몇 주요 길목에서 나는 동생과 함께 있었다. 동생이 처음 지망한 대학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에도 함께 있었고, 머리를 허옇게 밀고 군대에 가는 날도 함께 있었고, 단정하게 예복을 입고 결혼식을 올릴 때도 함께 있었다. 그런 고비가 눈앞으로 다가올 때마다 동생은 어김없이 나한테 연락을 해왔다. 그러면 나는 거북하고 귀찮고 번거로워도 어쨌거나 동생을 보러 갔다. 어쩌면 동생은 그저 겉으로 예의만 차린 것이 아니라, 그래도 나를 형으로 마음 깊이 의지했던 것일까. 어찌 되었든 형은 형이니까?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는 동생을 꽤나 오해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결혼하겠다며 데려온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언짢은 기분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것도 어쩌면 오해 때문이었을까. 평범한 대학, 평범한 직장도 모자라 마침내 결혼까지 평범한 여자와 하려는 동생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었다. 평범한 대학을 나와 평범한 직장에 들어간 동생이 평범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마땅한 일이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세상 이치이기도 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인정도 한다. 한데도 나는 화가 나고 속이 상했다. 꼭 동생만을 향한 감정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동생은 진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 겨우 이런 것이었나? 이런 결과를 얻으려고 그동안 아버지는 그토록 동생을 편애한 것인가. 동생의 장래에 대해서 별 관심도 애정도 없던 나의 그런 반응은 스스로 생각해도 참 민망하고도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와서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기에?

교회에서 만난 여자라고 했다. 동생은 나와 달리 엄마를 따라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둘은 학생 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고 하니, 벌써 오래된 사이일 터였다. 나는 처음으로 동생의 안목이, 감성이 의심스러웠다. 어째서 이토록 평범하다 못해 평범 이하로 보이는 여자와 결혼을 하려는 것인지, 동생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무언가 심각한 약점을 잡힌 것일까. 크게 잘못한 일이 있는 것일까. 그래서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일까. 한 마디로 코를 꿴 것일까. 심지어 그런 터무니없이 저속한 생각도 해보았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도 동생한테 어울리는 외모의 여자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돌올하게 튀어나온 넓은 앞이마가 제일 먼저 눈길을 끌었다. 단박에 거부감이 들었다. 게다가 눈동자는 어딘가 모르게 초점이 맞지 않아 탁하고 퀭한 느낌이었다. 눈빛이 맑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겁에 질린 기색이었고, 의심이 많은 것 같기도 했다. 한마디로 우울해 보였다. 고장이 나서 볼륨이 조절되지 않는 라디오를 틀어놓은 것처럼 목소리가 유난히 컸고, 말투 또한 거칠고 호전적이었다. 여자는 자기 입 밖으로 나가는 말이 상대방의 기분을 마뜩잖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말을 우선 내뱉어놓고 보는 무신경한 유형인가 싶었다. 그런 습성을 이 나이가 되도록 고치지 못했다면 생전 자기반성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고, 숫제 할 줄도 모르는 여자가 아닌가 싶었다. 얌전하지도 다소곳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예의 바르지가 않았다. 누구한테라 할 것 없이 인사를 제대로 차릴 줄 몰랐다. 애지중지, 부모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 자라 철이 덜 든 것하고는 달랐다. 한마디도 품위가 없었다. 이렇게밖에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덜컥,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는 경계심이 들었다. 착한 여자가 아니구나. 그게 내 결론이었다.

나는 형이었다. 새삼 형으로서의 책임감이나 의무감 같은 것이 내 온몸을 옥죄어 왔다. 낯설고 이상했다. 참 새삼스러웠다, 그런 내 마음과 몸의 반응이. 나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한테 까닭 모를 어떤 적대감을 품고 있어서 무례한 것인지, 아니면 부모한테서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지 못한 탓에 예의 차리는 일에 대한 감각을 아예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인지.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속물스러운 생각부터 하고 드는 나 스스로가 놀랍고 혐오스러웠다. 그래도, 동생의 아내가 될 사람이었다. 생판 모르는 남이라면 내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동생이 장차 결혼하여 남은 세월을 함께할 여자였다. 어떻게 해서든 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다독일 수 있을 만한 장점을 찾고 싶었다.

결국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동생은 그 여자가 좋아서 결혼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차마 말 못 할 무슨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라도 마음을 눅이지 않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평범한 대학을 나와 평범한 직장을 다니고 있을망정 겨우 그런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할 만큼 보잘것없는 동생은 아니지 않느냐는 내 생각을 어떻게든 합리화시키고, 그런 내 의문에 걸맞은 답을 기어이 찾고 싶었다. 물론 찾아질 턱이 없었다. 괴로웠다. 간절히 묻고 싶었다, 동생한테. 너는 그 여자를 정말로 사랑하는 거냐?

그때 문득 내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바로 죄책감이었다. 그러니까 동생은 나에 대한 죄책감으로, 속죄하는 심정으로 그런 여자와 결혼하려는 것이다. 일종의 자포자기다. 심리학적으로 맞는 해석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어쨌거나 그거라면 얼마간은 설명이 된다고 생각했다. 동생으로서 형이 마땅히 받아야 할 아버지의 관심을 본의 아니게 오랜 세월 빼앗아 온 데 대한, 그래서 부당하게 그 관심을 혼자서만 누려온 데 대한 죄책감. 그에 대한 보상 심리로 동생은 그런 천격의 여자와 결혼을 하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에 대한 속죄를 하려는 것이다. 일종의 자학이다. 그렇게 나는 제멋대로 규정했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가 되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 동생에 대한 화, 동생을 그렇게 만든 아버지에 대한 화. 결국 동생이 이런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 것은 아버지였다.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아버지로서 마땅히 두 발 벗고 나서서 아들의 결혼을 말려야 할 텐데도 아버지는 고약스러우리만큼 무덤덤하고 심드렁했다. 그 또한 자포자기였을까. 아들이 누구와 결혼을 하건 이제 자기는 거기에 간섭할 자격이 없다는 태도? 내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음에 어떤 변화가 생겼던 것일까. 동생은 설명해 주지 않았다. 설명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동생은 행동에 견주어 말수가 적었다. 그것만은 동생다웠다. 하지만 내 마음은 끝없이 불편했다. 도무지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동생은 그 여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나는 마음을 접었다. 안 보고 살면 그뿐이다. 남이라고 생각하자. 자업자득이다. 내가 어쩌겠는가. 이렇게 마음을 쓰는 것 자체가 나답지 않은 일이다. 나는 내 둘레에 서둘러 드높은 방어벽을 쌓아 올리고, 그 안쪽, 온전한 나만의 세계로 숨어 들어와 웅크리고 앉았다. 그게 내가 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해결책이었다.

그 동생이 지금 몸져누운 형을 들여다보러 와 있다. 그리고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있다. 만감이 교차했다. 아프다는 것은 편리하다. 내가 복잡한 심경이면 동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환자 앞이니 다들 그런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한다. 그게 눈에 보인다. 느낄 수 있다. 그렇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이렇게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해야만 할 이야기들이 있지 않을까. 그래, 이럴 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알고 있다. 며느리도 없고, 사위도 없는, 순수한 우리 피붙이, 우리 가족만의 자리가 아닌가.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할 수 없다.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는 중에도 시간은 가차 없이 흐른다. 이렇게 때가 지나간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이다.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가족이다. 안다. 이미 저마다 마음속으로는 많은 말들을 하고 있다. 나도 많은 말들을 하고 있고, 저들도 나한테 많은 말들을 건네 오고 있다. 공기 중에 발화되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말은 말이다. 말이 오가는 기미를 느낀다. 소통 아닌 소통. 그렇다는 티를 낼 수는 없다. 이 집 안은 지금 그런 소리 없는 말들로 가득 차 있다. 터질 듯하다. 숨쉬기가 버겁다. 윗몸을 살짝 일으켜 팔을 뻗는다. 손끝으로 창을 조금 연다. 비좁은 틈으로 어지간히 식은 저녁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밀려 들어온다. 그제야 나는 심호흡하듯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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