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기다림_14

- 14. 내 남동생, 첫 번째

by 김정수

14. 내 남동생, 첫 번째

외래날짜가 다가오고 있다. 내 몸은 어느 정도나 회복되었을까. 회복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는 할까. 그런 판단을 내린다면 의사는 내 뱃가죽에 달려 있는 체액 주머니를 떼어내줄까. 행동에 제약이 말도 못 하게 심하다. 행여 잘못될까 싶어 몸을 내 멋대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엎드리지도 못한다. 시체처럼 똑바로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어야 한다. 그게 나한테 허락되어 있는 단 하나의 자세다.

퇴원 수속을 밟고 있을 때 나이 든 간호사는 뭔가 좋은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나한테 별것 아니라는 듯 거의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린아이들도, 연세 드신 분들도 이러고 할 거 다 하면서 살아요. 못 알아들을 말은 아니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지. 참고 견디라는 얘기였다. 간호사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자기 말이 환자인 나한테 위로가 되리라고 굳게 믿는 모양이었다. 같은 처지의 환자들이 적지 않으니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라는 것일까. 하지만 이게 뭔가. 너무 꼴사납지 않은가. 나는 처음이었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영영 익숙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몸은 적응하겠지만 마음은 늘 불편할지도 모른다. 몸에 안 맞는 옷,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옷을 강제로 입고 있는 기분. 하긴 예술가가 디자인한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기능만을 따져서 만든 기구다. 그 비인간적인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구한테든 이런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흉측하다. 그 느낌을 좀처럼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뱃가죽에 달린 관을 통해서 빠져나오는 체액의 양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도 파악하고 있다. 비록 그것 하나뿐이지만, 몸이 회복되고 있다는 분명한 징후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나만이 아니다. 어머니의 마음 또한 지금 그렇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이제 나으려나 보네. 어머니의 말이다. 예전에 곧잘 듣던 소리다. 감기를 앓던 내가 어느 순간 코피를 흘리면 어머니는 말했다. 이제 나으려나 보네. 고열에 시달리던 내가 어느 순간 땀을 흘리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차분하게 천장을 올려다보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한마디 하였다. 이제 나으려나 보네. 속탈이 나서 무엇이든 먹기만 하면 다 게우던 내가 어느 순간 말간 미음을 군말 없이 삼키면 어머니는 또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나으려나 보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며칠 안 가 틀림없이 병에서 놓여나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말하자면 그것은 나한테 병을 낫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아프기만 하면 나는 어서 어머니가 그 말을 해주기를 고대했다. 때로는 참기 힘들 만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마침내 어머니의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오면 나는 그동안의 조바심과 고통을 거짓말처럼 말끔히 잊어버렸다.

남동생이 왔다. 어머니와 함께 지낸 지 꽤 시일이 지났다. 오고 싶은데 내가 어느 정도 회복되기를 기다린 것인지, 아니면 오기 싫은 것을 가까스로 참다가 이제야 억지로 얼굴을 내민 것인지 알 수 없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표정이 없었다. 호불호가 분명치 않았다. 적어도 낯빛으로 자기 마음을 또렷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종잡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게 나름의 처세였을까. 동생은 아버지한테서 귀염을 많이 받았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동생을 좋아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그걸 보고 알았다. 아들이 아버지한테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눈빛이, 손길이, 태도가, 온기가 달랐다. 아버지는 한 번도 나를 동생을 바라보는 그 눈빛으로 보아준 적이 없다. 동생을 어루만지는 손길로 나를 만진 적도 없다. 하여튼 동생을 대하는 태도로 나를 대한 적이 없다. 그런 온기를 나는 아버지한테서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동생이 싫었다. 대놓고 못살게 굴지는 않았지만 살갑게 대한 적도 없다. 어쩌면 나는 동생을 겁냈는지도 모르겠다. 미우면서도 겁이 나는 존재. 질투가 나면서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대상. 아버지의 지지를 받는 아들과 그렇지 못한 아들. 동생의 자리와 내 자리는 그렇게 많이 달랐다. 나는 타고난 권세를 잃은 형이었다.

스스로 분석해 본 적이 있다. 어째서 동생은 사랑을 받는데 형인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걸까. 분석은 쉬웠다. 답이 너무도 자명해서 놀랐다. 내가 아버지라도 나 같은 아들은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겁이 많고 매사에 자신감이 부족했다. 성적표의 가정통신란에는 늘 얌전하고 내성적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의사표현력이 신통치 않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은 선생도 있었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을 비수처럼 찔렀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제법 깊이 상처받았다. 그런데도 선생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런 마음을 먹을 줄도 몰랐다. 나는 스스로를 탓했을 뿐이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싫었던 것이다. 내 성적표를 들여다보는 아버지의 표정을 나는 차마 확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타부타 말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 느꼈다. 그 순간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사내자식이라면 모름지기 활달하고 씩씩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그런 건 굳이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문제다. 나는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내 눈으로 동생의 성적표를 본 적은 없다. 내 것과는 다른 내용이 거기에 적혀 있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동생의 성적표를 보는 아버지의 표정은 내 성적표를 볼 때와 확연히 달랐다. 아버지는 동생을 편애했다. 어쩌면 그러지 않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사려 깊게 자기 마음을 감출 줄 몰랐다. 그게 아버지라는 위인이었다. 아들이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어쩌면 숫제 그럴 뜻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한테 상처를 주는 일에서 어떤 쾌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일종의 가학 취향. 그러니까 아버지는 내가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셈이다.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까닭은 그걸 즐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동생은 확실히 빠릿빠릿했다. 나하고는 달랐다. 나는 생각이 많았고, 동생은 행동이 재발랐다. 그게 아버지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약삭빠른 처신. 나는 그런 점에서 매우 굼떴다. 견디다 못해 나는 마침내 동생을 흉내 내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잘 되지 않았다. 잘 될 턱이 없었다. 몸을 굵은 밧줄로 칭칭 동여맨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처럼 견딜 수 없이 불쾌하고 꺼림칙했다. 나한테 안 맞는 일이었다. 그런 나 자신이 딱했다. 그게 또 싫었다. 나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것은 차라리 자학이었다. 아버지의 가학과 나의 자학. 결국 나는 그 두 겹의 학대에 한꺼번에 시달렸던 셈이다.

나보다 키도 체구도 큰 동생이 마루를 건너 내가 누워 있는 방으로 성큼 들어온다. 바닥이 쿵쿵 울린다. 동생은 문턱에 잠시 멈춰 선다. 나를 내려다보는 동생의 눈길을 느낀다. 문이 꽉 찬다. 어둡다. 그래도 동생이 양복 정장 차림인 것은 알아볼 수 있다. 퇴근길에 잠시 들른 것이다. 나는 동생 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리는 척한다. 똑바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동생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재바른 행동에 견주어 말이 별로 없다. 그 뒤에 어머니가 서 있다. 동생은 서 있을까 앉을까 잠시 망설이는 눈치더니 이윽고 털썩 주저앉는다. 동생이 몰고 온 바깥공기가 온 방 안을 한 차례 휘젓는다. 서늘하다. 어머니는 앉지 않고 선 채로 두 아들을 내려다본다.

괜찮아? 동생의 목소리다. 어렵사리 내뱉은 한마디. 낮다. 조금 쉰 듯하다. 역시 어색하다. 서먹하다. 나는 말로 대꾸는 하지 않고 눈을 한 번 질끈 감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준다. 동생이 내 뱃가죽에 달려 있는 것을 내려다본다. 아차, 싶다. 그걸 보이지 않게 수건으로 덮어놓는다는 걸 깜박 잊어버렸다. 사나운 꼴이다. 나는 눈을 뜨지 않는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불편하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녁 먹어야지? 동생한테 하는 말이다. 대답이 없다. 어머니가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간다. 동생한테 줄 저녁상을 차리려는 것이다. 말없이 동생이 일어선다. 공기가 다시 한번 휘저어진다. 아까보다는 서늘한 맛이 좀 모자란다. 동생이 방을 나가 마루를 건너 저 멀리 구석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거기에 어머니가 달그락 저녁상 차리는 소리가 섞인다.

한때는 동생이 내 방패막이가 돼주기를 바란 적도 있다. 적어도 아버지의 관심이 동생한테 쏠리는 동안만큼은 나는 아버지한테서 해방되는 셈이니까. 동생은 아버지의 눈에 들고, 나는 아버지의 눈 밖에 난다. 관심을 받지 못할 바에야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믿었다. 아버지의 애정과 지지를 받는 아들의 장래는 밝을 것이라고. 동생은 뭘 하든 잘할 것이고, 마침내 성공할 것이라고. 나는 도태되고 동생은 쭉쭉 뻗어나간다고. 그게 맞다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지만 지금 동생은 너무 평범해졌다. 평범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들지만, 달리 떠오르는 형용사가 없다. 평범한 대학을 나와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평범한 여자와 결혼했다. 아니, 평범하다 못해 평범 이하인 여자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게 이상하게 싫다. 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조차 힘겨운 세상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동생만은 그렇지 않을 줄 알았다. 동생은 내 기대를 저버렸다. 그렇다고 동생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만큼 내가 동생을 끔찍이 아낀 것은 아니다. 그런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동생은 인생이 잘 풀려야 했다. 적어도 나보다는. 그게 맞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부당하다.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동생은, 동생의 인생은 이상하리만큼 평범해져 버렸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배신감마저 느꼈다. 동생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배신감은 아버지에 대한 것이기도 했고, 운명에 대한 것이기도 했고, 나아가 신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그 어느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인 배신감. 아무렴 이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이 아니다. 누가, 무엇이 동생의 삶을 이렇게 평범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는가.

동생은 평범할 뿐만 아니라 기이하리만큼 무던했다. 그래서 군말 없이 형 몫의 집안일을 대신 했고, 군말 없이 그런 평범 이하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 어쩌면 동생은 형이 누려야 할 것들을 동생인 자신이 대신 누린 데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일종의 보상 심리? 설마.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동생이 나오는 소리. 나는 눈을 뜨고 고개를 소리 나는 쪽으로 슬며시 돌린다. 내 남동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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