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기다림_13

- 13. 직장 동료, 두 번째

by 김정수

13. 직장 동료, 두 번째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서로 워낙 바빠 적조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나 안부 문자를 보냈는데, 이런 답장이 왔다. 나는 그가 과로로 잠시 쉬려고 입원했으려니 싶었다. 몇 달 동안 연락을 못 했다. 나도 그랬지만, 그가 너무나 바빴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로 회사를 차렸다. 아직은 조그마한 사무실 하나에 직원 한둘만 둔 디자인 회사였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다. 개업식 같은 걸 할 겨를도 없이 그는 거래처를 만들고 일거리를 받아오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였다. 술자리도 많았고, 흡연량도 늘었다. 본업인 디자인은 어느새 뒷전이었다. 그제야 그가 받아온 압박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없이 거절당했을 것이다. 어렵사리 거래가 성사되었어도 그다음은 그 거래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겨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제때 결재가 되지 않아 겪어야 하는 노심초사도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니었을 테고. 그 모든 일이 그의 정신을 혹사키시고, 그의 몸을 망가뜨렸다. 충분히 헤아릴 만했다. 어쩌면 몹시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문병을 가서 보니, 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였다. 다인실의 맨 구석 자리가 그의 병상이었다. 그는 후줄근한 환자복 차림으로 일어나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쪽은 반은 유리창이고 반은 벽이었다.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셨다. 그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병상으로 가까이 다가가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말을 붙이기보다는 손부터 잡아보고 싶었다. 손을 잡은 채로 첫마디를 내뱉고 싶었다. 이게 어쩐 일입니까. 한데, 그는 손을 마주 내밀어오지 않았다. 내 손은 허공에 그대로 얼어붙었고, 내 입은 말 건넬 기회를 잃었다. 병상 위에서 그가 뒤로 조금 물러났다. 그림자 속으로 그의 얼굴이 들어갔다. 그제야 나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싱긋 웃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악수를 하지 말라네요. 감염이 되면 안 된다고……. 한없이 미안해하는 눈빛으로 말꼬리를 감추는 그를 나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조금 쉰 듯도 했다. 연극배우가 분장을 한 듯 눈자위가 퀭했다. 그것으로 나는 그의 증상을 거지반 파악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무균실에 들어가 있다가 조금 전에 나왔어요. 아직은 좀……. 입원한 지 벌써 여러 날째였다. 이렇게 되도록 어째 연락 한 번 안 했느냐고 따져 물을 수 없었다. 나는 병원 일층 로비의 구내매점에서 사 들고 간 과일바구니를 병상 머리맡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앉으세요. 그가 병상 밑에 놓인 보호자 용 침대를 가리켰다. 괜찮다고, 그냥 서 있겠다고 말하려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그 간이침대에 걸터앉았다. 내가 서 있으면 그가 불편해할 것 같았다. 대접할 게 없네요. 집사람이 오려면 아직 좀 더 있어야 하는데……. 그는 자꾸 말꼬리를 끌었다. 아랫배쯤에서 다소곳이 마주 잡은 그의 두 손이 내 눈앞에 있었다. 손을 내밀어 붙잡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평일이었다. 나는 그날 처리할 일을 서둘러 끝내고 미리 나왔다. 그가 암이라는 사실은 그에게서 받은 문자로 이미 알고 있었다. 수술은 필요 없답니다. 항암제로 치료를 시작했으니까 곧 나아지겠지요. 경황이 없을 텐데도 그는 내가 놀라지 않도록 알뜰히 배려하고 있었다.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일하던 것을 밀쳐두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병명은 림프종, 일종의 혈액암이었다. 제일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사망률이었다. 다행히도 다른 암들보다 높지 않았다. 하지만 완치율은 오히려 못 미쳤다. 일정한 수준으로 위험도를 낮춘 다음 그 상태를 되도록 오래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 결과라고 되어 있었다. 의학용어로 이를 관해(寬解)라고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거기까지가 현대의학의 한계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것이 어디인가. 죽지 않는다니 천만다행 아닌가. 그렇게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잘 되지 않았다. 가슴이 떨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숨쉬기가 거북했다. 사무실이 순간 공기가 희박한 밀폐공간으로 변한 듯했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선한 바깥공기가 필요했다.

병원에서는 뭐라던가요? 나는 겨우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잠깐 입속으로 말을 고르다가 마침내 그간의 사정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저도 이런 병이 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배어 나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하루도 마음 편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피곤한데, 피곤하다고 느낄 새도 없었다. 하루는 아랫배 쪽에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소화불량이라고만 여겼다. 며칠 버티다가 소화제를 사다 먹었다. 차도가 없었다. 몸이 너무 무거웠다. 길을 걷기가 힘겨웠다. 머리도 지끈거렸다. 언젠가는 걷다가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한 적도 있었다. 차라리 감기 몸살이라면 병원을 가볼 생각이라도 했을 텐데, 증세가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쉴 수 없었다. 고통스러운 대로 버텼다. 그렇게 또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 무심코 아랫배에 손을 댔는데, 단단한 덩어리 같은 것이 만져졌다. 깜짝 놀랐다. 그제야 문득 위기감이 들었다.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우선 가까운 동네 개인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그를 눕히고 한동안 손으로 촉진을 해보더니 대뜸 큰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도 얼마간 시간을 또 낭비했다. 처리해야 할 일이 계속 밀려들었다. 일은 그의 사정 따위 봐주지 않았다. 누구한테 대신 좀 해달라고 맡길 수도 없었다.

때를 놓친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가 말했다. 내 생각도 같았다. 모든 병이 그렇지 않은가. 암은 더더욱 그렇다. 그는 때를 놓쳤다. 진즉에 병원을 가보지 그랬느냐고 질책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말, 그의 용기를 북돋워 줄 수 있는 한마디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그가 나를 위로해 줄 말을 찾고 있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입은 쉽사리 열릴 줄을 몰랐다. 참, 사람 일이 뜻대로 되질 않네요. 그가 또 소리 없이 멋쩍게 웃었다. 그는 자꾸 웃었다. 내 눈앞에 놓인 그의 손목이 유난히 가늘어 보였다.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는 부위였다. 병치레하느라 몸이 야윈 탓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창턱에 휴대전화와 노트북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뭘 좀 해보려고는 하는데, 잘 안 되네요. 그의 목소리에는 벌써 깊은 체념이 서려 있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어쩌면 최악의 경우 일을 아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무슨 계획이 있느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떠다녔지만, 나는 어떤 말도 입 밖에 함부로 꺼내놓을 수 없었다. 그는 자꾸 말을 하고, 나는 하릴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 그것만이 그 자리에서 내가 온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가 퇴원한 뒤에 한 번 더 만났다. 장어구이 집이었다. 그가 즐기던 음식이 아니었다. 이런 걸 많이 먹으라네요, 하고 지나가듯 그가 말했다. 고단백의 식사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병이 다 나아서 퇴원한 것이 아니었다.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항암치료를 더 받아야 했다. 사 차, 오 차 얘기가 나왔다. 적어도 팔 차까지는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체력이 허락한다면 십 차까지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여기저기서 이미 들은 바가 있는 소리였다. 한없이 고통스러운 과정일 터였다. 그때까지 살아는 있을까. 살아 있기만 하면 괜찮은 것일까. 체력이 바닥이에요. 그가 말했다. 항암제는 암세포만 골라서 죽이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정상세포도 함께 해친다. 그런 쪽의 분별력이 항암제에는 없다. 무도하다. 그래서 몇 시간에 걸쳐 한 번 항암제 주사를 맞고 나면 백혈구 수치가 급격히 떨어진다. 무균식을 해야 한다. 완전히 익힌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채소도 과일도 날것으로 섭취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과 악수도 못한다. 상태가 좋지 않다 싶으면 회복될 때까지 무균실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면회도 안 되는 중환자실이다. 게다가 한 번으로 끝나는 치료가 아니다. 몹시 버거운 과정이다. 환자의 몸이 견딜 수 있는 한계치를 시험하는 절차다. 오랜 시간을 버틸 인내력과 체력이 필요하다. 좋은 결과가 보장되어 있지도 않다. 재발의 위험은 언제나 있다. 그래도 환자 처지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뭐라고 물어보고 싶어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비니였다. 머리를 말끔하게 밀었다. 그냥 두자니 아무래도 보기가 흉하더군요. 그가 허연 귀밑머리를 손가락으로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러면서 또 싱긋 맥 빠진 웃음을 입에 물었다.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였다. 탄력을 잃어버린 두 볼에 하프의 현 같은 몇 가닥 세로 주름이 오롯하게 새겨져 있었다. 피치카토. 슬쩍 건드리면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그가 웃을 때마다 조금씩 모양새를 바꾸는 그 주름들이 이상하게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는 식사를 끝낼 때까지 내내 모자를 벗지 않았다. 하긴 그 허연 머리를 보면서 온전히 밥을 먹을 수는 없지 싶었다. 그 또한 나에 대한 배려일 터였다. 더 먹으라고 내 몫의 장어 몇 토막을 그의 접시에 옮겨주었다.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구나. 도와주고 싶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수술실에서 실려 나오면서 처음으로 그를 생각했다. 정신은 말짱한데,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가 나를 문병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상상 속에서도 그는 검은색 비니를 목덜미까지 눌러쓰고 있었다. 가슴이 아렸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마취제도 눈물샘까지는 건드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참았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간호사한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또 누가 나를 보고 있을까. 부모님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면 작은 기척이라도 방해가 될까 싶어 있는 힘을 다해 숨죽이고 있는 것일까. 내가 누워 있는 이동식 침대를 밀고 있는 사람은 여자 간호사와 남자 간호사, 이렇게 둘인 듯했다. 나는 음습하고 차끈한 오동나무 관 속에 드러누운 시체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병원 복도 천장의 형광등 불빛에 눈이 부셨다.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눈을 떴다. 시술을 받았다는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자판을 눌러 글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퇴원해서 몸조리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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