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기다림_12

- 12. 직장 동료, 첫 번째

by 김정수

12. 직장 동료, 첫 번째

몸은 좀 어떠신가요? 아내의 문자가 아니다. 점심 약을 먹고 한숨 잤다. 눈을 뜨자마자 시각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열어보니 문자가 와 있다. 한 시간 전에 도착한 문자다. 진동이 일 때 모르고 내처 잤나 보다. 아직 약기운이 남아 있어 몸은 노곤해도 정신은 금세 말짱해진다. 밝다. 한낮이다. 덥다. 창이 닫혀 있다. 자기 전에 살짝 열어놓은 것을 어머니가 도로 닫아놓은 게 분명하다. 휴대폰을 쥔 채 손을 바닥에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답으로 보낼 문자를 머릿속으로 지어본다. 연락해 주고 싶었지만, 경황이 없어 때를 놓쳤다. 아마 회사동료들한테서 어찌어찌 소식을 전해 들은 모양이다.

그는 지난해 봄에 회사를 나갔다. 고민이 많았다. 벌써 마흔 줄에 접어든 나이에 십 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을 수 없다고, 더는 늦출 수도 없고, 버틸 수도 없다고. 아이가 아직 어렸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결혼하여 얻은 딸이었다. 바야흐로 한창 돈이 드는 뒷바라지가 필요한 시기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꼭 그래야 한다면 아이가 더 크기 전에 다른 길을 찾는 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위안의 논리에 지나지 않았다. 무모한 결정이 아니겠느냐고, 좀 더 신중히 처신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만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은 그와 헤어지는 것이 싫었다.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함께라면 여기가 내 마지막 직장이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나이도 같았고, 키도 체격도 비슷했다. 사회생활 하면서 그런 동료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속해 있는 부서가 서로 달라 처음 한동안은 얼굴 볼 기회가 없었다. 나는 편집부였고, 그는 디자인부였다. 그를 처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점심 식사 때였다. 편집부와 디자인부 동료들이 어울린 자리였다. 바로 그 전날, 새로 들어온 사람을 환영하는 뜻으로 편집부 회식이 있었다. 그때 서로 겹치는 업무영역이 많은 디자인부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라도 마련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바로 이튿날 그게 성사되었던 셈이다. 회사 근처 뼈 해장국집이었다.

내 맞은편에 그가 앉았다. 두 부서가 서로 마주 보도록 자리 배치를 하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가 짐짓 내 앞에 앉았을 수도 있다. 그는 분홍색 카디건 차림이었다. 조금 눈에 거슬렸다. 남자가 분홍색이라니, 하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그날따라 화창한 날씨여서 햇살이 강렬했다. 내 등 뒤에서 똑바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그가 입고 있는 카디건의 분홍색이 환하게 도드라졌다. 눈이 조금 시려 그를 외면하듯 고개를 숙였다.

입사한 지 채 한 주일도 안 된 터라 나는 아직 여러 가지로 서먹서먹한 자리였다. 대강 사람 소개가 끝나고 뚝배기가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다. 문득 그가 나한테 말을 붙여왔다. 아직 좀 어색하시죠? 자기 앞에 놓인 뚝배기를 나한테 양보해 주면서 한 소리였다.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운데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날 처음 봤으면서도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그가 평생 크게 고함 한 번 친 적이 없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친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양념장 종지도 내 쪽으로 좀 더 가깝게 밀어놓았다. 분명 친절한데, 나는 그게 고마우면서도 적이 거북했다. 어딘가 모르게 지나치다 싶은 느낌. 속에서 본능적인 경계심이 일었다. 카디건의 분홍색이 아무래도 개운치가 않았다. 예전의 경험 하나가 떠올라서였다.

고등학교 때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곧잘 동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곤 했다. 비용이 드니까 늘 그러지는 못하고 주로 시험 기간에 그곳을 찾았다. 꼭 나처럼 집에서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는 녀석들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그때 독서실은 우리 또래들이 부모님의 눈을 피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공부는 해야겠는데 간섭받기는 싫은 녀석들. 그러니 독서실은 일종의 해방구였다. 물론 독서실도 완전한 자유의 공간은 아니었다. 정말로 공부에만 집중하는 녀석들도 있었고, 무슨 싸구려 여인숙이나 지금의 고시원처럼 그곳에서 헐값으로 기거하는 일반인들도 더러 있었다.

그 시절 내가 다니던 독서실에서는 이따금 나타나는 머리 희끗한 주인 말고 우리 또래보다 고작 서너 살 위인 정체 모를 젊은 남자가 총무라는 직함으로 상주하며 관리를 맡고 있었다. 환기나 청소가 기본업무였고, 떠드는 녀석들한테 주의를 주며 정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려 제법 애도 썼다. 기숙사로 치면 사감 비슷한 존재였던 셈이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목소리가 고운 청년이었다. 아무리 야단치는 소리를 해도 우리 귀에는 타이르는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 독서실에 다니는 아이들 가운데 누구도 청년을 무서워하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차라리 깔보았다고 해야 옳다. 하루는 청년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가끔 독서실비 미납문제로 아이들이 사무실에 불려 다니는 걸 알고 있던 터여서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독서실비는 이미 냈는데?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청년은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소파에 나를 앉힌 다음 주스 한 잔과 과자를 내주면서 먹으라고 했다. 다소곳하고 친절했다. 마침 뭔가 군것질을 하고 싶던 참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 청년이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화사한 색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청년은 평소 늘 밝은 색 계통의 옷들을 입고 지냈다. 그 가운데 분홍색도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넓은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사무실 안을 뽀얗게 채우고 있었다. 담배 연기가 좀 섞여 있었던 것도 같다. 냄새가 났다. 하지만 좋은 냄새 쪽이 더 진했다. 향수 냄새인 듯도 했고, 화장품 냄새 같기도 했다. 청년은 내가 먹는 모습을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매가 부드러웠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슬그머니 청년의 눈길이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기분이 개운치가 않았다. 그제야 먹는 데 정신을 파느라 그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자 집던 손길을 멈추고 서둘러 남은 주스를 마저 삼킨 다음 짐짓 빈 유리잔을 소리 나게 탁 내려놓았다. 그걸 핑계 삼아 쭈뼛쭈뼛 일어나 청년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때까지도 청년은 여전한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가도 좋다고 하지도 않았고, 더 있으라고 내 소맷자락을 붙잡지도 않았다. 복도를 걸어서 내 자리로 돌아오는데 거머리 같은 것이 뒷덜미에 달라붙는 듯한 이물감으로 나는 자꾸 진저리를 쳤다. 그런 일이 두어 차례 더 있었다. 결국 나는 그 독서실을 더는 다니지 않았다. 청년이 나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다른 녀석들한테 들어서 알았다. 물론 청년은 누구한테든 딱 거기까지였다.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는 그 몇 해 전 결혼을 해서 뒤늦게 얻은 딸한테 폭 빠져 있었다. 어느 날 퇴근 무렵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 건널목을 앞에 둔 인도에 서서 보행신호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데 누가 나한테 아는 체를 해왔다. 그였다. 이미 식사를 함께한 일도 있고 해서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바로 뒤에 있는 편의점 불빛이 환하여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있었다. 눈이 맑았다. 말투뿐만이 아니라 태도가 우선 공손했고, 무엇보다도 솔직했다.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처음 그의 고민거리를 알았다. 그즈음 벌써 그는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 계속 다녀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걸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습관처럼 털어놓는 흔한 푸념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그게 어지간히 심각한 고민이라는 사실을 나는 시간이 좀 더 지나 회사 사정을 깊이 파악하고 나서야 비로소 헤아릴 수 있었다.

회사는 연간 매출액으로 따지면 어엿한 중견기업이었다. 재무구조도 탄탄하고, 동종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도 안정적이었다. 필요에 따라 직원을 함부로 해고하는 악습도 다른 회사에 견주어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었다. 겉보기에 규모는 작았지만, 나름대로 이상적인 직장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평가는 아니었다. 내가 그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그런 점에 솔깃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족 회사였다. 회장의 친인척이 아닌 직원이 승진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중요한 직위는 예외 없이 회장 일가의 차지였다. 그렇다 보니, 다른 직원들의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기 힘든 구조인 것은 속절없는 노릇이었다. 안정만이 목표라면 나무랄 데 없는 직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뭔가 이루고 싶은 뜻과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는 디자이너였다. 자유로움과 창의성이 생명이어야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독특한 디자인을 할라치면 어김없이 간섭이 들어왔다. 현재의 안정된 상태를 뒤흔들 만한 어떤 시도도 허용되지 않았다. 거기서 그가 하는 작업을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는 어려웠다. 그는 기껏해야 일개 기능공이었다. 답답했을 것이다. 게다가 제때 승진도 시켜주지 않았다. 그는 몇 해째 계속 같은 직급에 묶여 있었다. 함부로 해고를 하지도 않지만, 좀처럼 승진도 시켜주지 않는 이상한 회사였다. 그건 직원한테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읽힐 수도 있는 처사였다.

그한테는 그게 어느 순간부터 견딜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처럼 일자리 구하기 힘든 경제난 시대에 그건 사치스러운 고민이라고 말해줄 수 없었다. 이미 그는 거지반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그는 그만두고 싶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누구한테서라도 흔히 들을 수 있는 푸념이요 하소연일 뿐이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이야기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의 가장 주요한 안줏거리였다. 거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데, 그의 말은 조금 달랐다. 그는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지 않고,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만두고 싶지 않은데도 그만두지 않을 수 없는 처지―.

디자인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가 어떤 말 못 할 일을 겪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나날이 숨이 막혔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낯빛이 좋지 않았다. 마음만이 아니라, 몸도 상하고 있었다. 유감스럽지만 결단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나는 느꼈다. 그건 이제 그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결단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많은 사람이 그런 식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나간다. 드문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뒤다. 회사를 나간 다음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작게나마 내 일을 하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입매에는 처음 보는 결기가 서려 있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작은 디자인 회사를 차리겠다는 소리였다. 지지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와주고도 싶었다. 그에게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일터를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