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기다림_16

- 16.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

by 김정수

16.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

아버지가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이상하다. 집 안 어디선가 혼자서 몰래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듣는 것 같지도 않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음악을 듣지 않게 된 것일까. 아니면 몸져누운 아들한테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싶어 애써 참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아버지 나름의 속 깊은 배려일까. 역시 변한 것일까. 세월이 흐른 것일까.

아버지는 청각이 온전치 못하다. 그렇다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은 아니다. 듣기는 듣는다. 또렷하게 잘 들리지 않을 뿐이다. 중요한 대화를 나눌 때는 귀에 보청기를 꽂는다. 그러니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볼륨을 한껏 키우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집에서 낡아빠진 전축으로 흔히 베토벤의 교향곡을, 더러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온 집안이 떠나갈 듯, 온 동네가 떠나갈 듯 크게 틀어놓고 듣곤 하였다. 물론 우리 귀에는 크게 들렸지만, 아버지의 귀에는 그냥 보통 크기의 소리였을 것이다. 이웃의 원성을 사도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늘 조마조마했다. 어머니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이웃집에서 누가 참다못해 달려와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며 항의를 해오는 일도 곧잘 생겼다. 지금 같으면 아마 경찰에 민원을 넣었을 텐데, 그 시절에 이웃들은 도저히 못 견딜 지경이 되면 몸소 찾아와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얼른 뛰쳐나가 사과를 하고, 나는 그런 굴욕을 빚어낸 이 모든 사태가 지긋지긋하고 싫어서 책상머리에 가만히 붙어 앉은 채 고개를 숙여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아버지를 말릴 도리는 없었다. 아니, 실은 말리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옳다. 음악을 틀어놓고 있을 때만큼은 아버지의 광태가 말끔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아버지의 광태로부터 잠시나마 온전히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음악이라는 보호막 속에 아버지의 광태는 온전히 갇혔다. 음악이 아버지를 관리해 준 셈이었다. 그에 견주면 음악소리 때문에 이웃한테 폐를 끼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우리는 그 곤혹스러움을 얼마든지 감수할 뜻이 있었다. 미안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도 해방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고마운 이웃들이었다. 어쩌면 그들도 알고 있었을까. 아버지의 광태가 음악을 듣는 동안만큼은 사라진다는 사실을. 그들도 우리 가족과 마찬가지 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렇다. 아버지의 고함소리, 아버지가 집어던진 물건이 벽에 부딪혀 깨지는 소리, 문을 함부로 쾅쾅 여닫는 소리가 이웃집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을 리 없다. 한밤중에 이웃집에서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소리는 이상하게 더 잘 들린다. 선명하고 크다. 소리만으로도 그 이웃집에서 지금 어떤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지 머릿속에 또렷이 그려볼 수 있다. 그것은 흔히 부부싸움이었고, 때로는 아버지가 딸을 야단치는 소리인가 하면, 형제간의 다툼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아내가, 딸이 울부짖는 소리가 뒤따른다. 가장이 제 분을 못 이겨 하늘이 무너져라 통곡하며 주저앉을 때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청각이 예민해지는 순간이다. 자기도 모르게 귀를 쫑긋 곤두세우고 그런 소리들을 숨죽여 들으면서 사람들은 그때까지 몰랐던 이웃집의 속사정을 낱낱이 파악한다. 어쩌면 다들 그런 방식으로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남몰래 작은 위안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동병상련. 어쩌면 은밀한 연대감. 그 시절에는 그렇게들 살았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어떻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손바닥만 한 구멍가게를 열어 코흘리개 아이들을 상대로 풀빵 장사를 해야 했을 만큼 어려운 가정형편이었다고 들었다. 아무리 도두보아도 클래식 음악과 어울리는 정경이 아니다. 주변에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게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는 환경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문화 속에서 자랐다. 그래도 몰락했으나마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의 후손이라는 타고난 자존심은 있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떻게든 아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했다. 자기들처럼 시골의 무지렁이로 인생을 끝내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듣기로는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의 의지가 컸다고 한다. 다행히 아버지는 공부를 잘했던 모양이다. 큰 어려움 없이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니 아버지가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을 알게 된 것은 아마도 대학 때였을 것이다. 어쩌면 꽤나 깊은 문화적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세계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을 테니까.

아버지의 학벌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나 해야 할 때 나는 곤혹스러워진다. 아버지가 사람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명문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한편이라면, 그런 대학을 나오고도 전혀 그런 대학을 나온 사람답지 않게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과 한심함이 다른 한편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은 부끄러움과 한심함이 자랑스러움을 속절없이 뒤덮어버린다. 자랑스러움은 어쨌거나 지나간 과거의 일이지만, 부끄러움과 한심함은 어쨌거나 갈데없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마치 스스로 그런 화려했던 과거 경력을 숨기듯 부정하면서 살아온 셈이다. 그래서인지, 고등교육을 배워서 교양을 갖춘 사람 티를 내듯 클래식 음악에 성치도 않은 귀를 기울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내 심경은 복잡했다. 그것은 고스란히 음악에 향한 내 마음이기도 하였다. 나는 클래식 음악이 싫었다. 싫으면서도 좋았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을 무턱대고 덩달아 좋아할 수는 없었다. 제 처자식한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광태를 사흘이 멀다 하고 함부로 저지르는 위인이 그토록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 자체로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죽이 잘 맞으니까 좋아하는 것이다. 고약하고 저주스러운 궁합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음악을 하도 크게 틀어놓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도 그것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자꾸 듣고 또 듣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클래식 음악에 익숙해졌고, 마침내 그것이 좋아졌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걸 좋아하는 나 자신이 싫으면서도 음악이 좋다는 느낌마저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어쩌면 그게 유일한 통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 내가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 어쩌면 내 쪽에서 바로 그 단 하나뿐인 기회를 차버린 것은 아닐까. 문득 낭패스럽다. 하긴 그때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 통로를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쓰지 않았다.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음악은 음악이고,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그러니까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악을 나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런 식으로 합리화시켰던 셈이다. 아버지는 나빠도 음악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아버지는 버릴 수 있어도 음악까지 버릴 필요는 없으니까. 아버지한테서는 떠나도 음악한테서 떠날 것까지야 없으니까. 적어도 음악은 나한테 잘못한 일이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사뭇 편리한 합리화였다.

어쩌면 정말 싫어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나는 아버지가 하는 일도 싫었다. 내가 철이 들 무렵 이미 아버지는 출판사를 다니고 있었다. 전공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직종이었다. 그것 자체가 아버지의 어떤 몰락을 상징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 스스로 자기 직업을 자랑스러워하거나 귀하게 여기는 모습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늘 권태로운 표정, 불만에 찬 태도였다. 마치 나는 이 따위 일이나 하면서 인생을 낭비해도 될 만큼 보잘것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시위라도 하는 듯이. 아버지의 그런 태도에는 그 업계 사람들에 대한 경멸이 가득 차 있었다. 그걸 아버지는 툭하면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오는 것으로 표현했다. 조금이라도 비위에 맞지 않거나 수틀리는 일이 생기면 아버지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표를 써 던지고 회사를 나왔다. 말 그대로 분노에 푸들푸들 떠는 손으로 휘갈겨 쓴 사직서를 냅다 상사의 얼굴에, 사장의 코앞에 여봐란듯이 집어던지고는 사무실 문을 발로 걷어차 열면서 뛰쳐나왔던 것이다. 그걸 집에 돌아와 어머니 앞에서 무슨 거창한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 눈에 퍽이나 기괴하고 엽기적이었다. 연극배우가 무대 위에서 과장된 모노드라마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아버지는 새로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집에서 일을 했다. 어디선가 두툼한 원고 뭉치를 받아와서 방구석의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담배연기를 푹푹 뿜어대며 밤새도록 교정을 보거나 윤문하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안방은 하루 종일 하얀 담배연기로 자욱했고, 아버지가 앉은 자리 둘레는 재떨이에 수북이 꽂힌 담배꽁초들과 여기저기 제멋대로 구겨 던진 원고 뭉치들로 그야말로 눈 뜨고 보기 힘든 지저분한 아수라장이었다. 그렇게 벌어들이는 수입이 충분할 리가 없었고, 우리 가족의 생계는 늘 위태로웠다. 어머니의 노심초사는 말할 것도 없다. 어린 내가 생각해도 그대로는 곤란하지 싶었다. 어머니는 가까운 봉제공장에 나가 재봉틀이라도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무슨 알량한 가부장의 자존심인지, 어머니가 일을 나가지도 못하게 했고, 바느질거리를 받아와 집에서 일하지도 못하게 막았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빚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여기저기 이웃이나 친인척한테 손 내밀러 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했다. 어린 아들한테 그런 모습을 온전히 숨기지 못할 만큼 어머니가 돈 꾸러 다니는 일은 비일비재했던 셈이다. 어머니는 지인들한테, 이웃들한테 늘 죄인처럼 굴었다. 우선 고개부터 숙이고 보았고, 아무리 못되고 매정한 대접을 받아도 곱지 않은 말씨로 되받아쳐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도 없었다. 어머니는 그 굴욕을 어떻게 참고 견뎠던 것일까. 그걸 헤아릴 능력이 나한테는 없다. 일은 못하게 하면서 빚은 낼 수 있게 한 아버지의 처사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아버지였다.

결혼을 해보니 알겠다. 직장에 다녀보니 알겠다. 아이들을 낳아 길러보니 알겠다.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며, 나날의 수입이 얼마나 중요하며, 남 신세 지지 않고 내 힘으로 한 끼 한 끼 먹고 살아가기가 얼마나 만만치 않은 일인지. 또 아버지가 얼마나 한심한 가장이었는지, 어머니가 얼마나 딱한 신세였는지, 이제야 알겠다. 그런 남편 곁을 끝내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꿋꿋하게 남아 있는 어머니도 이해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아버지가 싫었고, 그런 아버지 곁에 남아 있는 어머니도 싫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정말 싫었다. 생각만 해도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었다. 하얀 원고뭉치가, 두툼한 만년필이, 남이 써놓은 글을 다듬는 그 번잡한 작업이 감각적으로 치 떨리게 싫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와 아버지의 일을 경멸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지금까지 그 일을 해왔다. 그토록 싫었으면서도 결국 나는 아버지가 하던 일을, 아버지가 평생 해오던 일과 하등 다르지 않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아온 셈이다. 싫어하면서도 결국 닮아버렸다. 끔찍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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