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기다림_17

- 17. 어머니의 세탁기

by 김정수

17. 어머니의 세탁기

많이 익숙해졌다. 여전히 불편하긴 하지만, 이제는 화장실도 내 힘으로 갈 수 있고, 참기 힘들 만큼 심한 통증도 없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것을 몸에 달고 살아야 한다고 해도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몸의 적응력이 놀랍다. 한데도 어머니는 화장실 갈 때를 빼놓고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으려 한다. 밥을 먹을 때는 내가 젓가락질할 필요가 없도록 반찬을 집어 숟가락 위에 얹어준다. 내가 밥을 다 먹고 나면 빈 양푼을 가져와 내 무릎에 바투 대놓고는 치약 묻힌 칫솔과 물 담은 컵을 내민다. 누워 있을 때면 수시로 다가와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다. 세상에 이런 호사가 없다. 마다해도 소용없다. 아무래도 몸에 차고 있는 것을 제거할 때까지는 어머니의 손길을 벗어날 생각을 말아야지, 싶다. 실은 그게 편하기도 하다. 그냥 받아들인다. 누린다.

멀리서 또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낮고 가볍다. 빨랫감이 많아졌을 것이다. 어머니는 하루에 두 번 세탁기를 돌릴 때도 있다. 무더운 계절에 마음대로 샤워할 수가 없으니, 옷을 자주 갈아입을 도리밖에 없다. 머리는 이따금 아내가 와서 감겨준다. 그것마저 어머니한테 맡길 수는 없지 싶어 처음부터 아예 아내의 몫으로 정해두었다. 뱃가죽에 꼽고 있는 것 때문에 허리를 앞으로 구부리지 못하니, 반듯이 누운 채로 아내한테 머리를 내맡겨야 한다. 아내는 바닥이 젖지 않도록 수건과 커다란 비닐봉지를 겹쳐 베개처럼 머리 밑에 깔고 시작한다.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다. 마무리할 때쯤이면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숨소리가 제법 거칠다. 허리가 좋지 않은 어머니가 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다.

오랜 세월 어머니의 허리는 강도 높게 혹사당했다. 허리뿐이 아니다. 손도 무릎도 저마다 가혹하게 시달렸다. 고된 노동의 연속. 겨울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마다 방방이 연탄불을 갈아 넣어야 했고, 빨래도 늘 쪼그려 앉아서 손으로 했다. 추운 겨울 찬물에 손을 넣고 한참 동안 빨랫감을 만지는 것이 얼마나 혹독한 일인지를 어린 내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은 외할머니 덕이었다. 돌아가시기 이태 전 시골에서 올라오신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찾아오신 적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였다. 더도 말고 딱 하루 묵어 가셨다. 내가 알기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의 우리 집 분위기가 어땠는지, 아버지나 어머니가 어떤 태도로 외할머니를 맞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웬 작업복 차림의 젊은 사내가 외할머니 뒤를 따라 대문을 들어섰다. 그는 자기 몸집만큼이나 커다란 종이 상자를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거기서 세탁기가 나왔다. 저것이 사람을 대신해서 빨래를 해준다는 기계로구나, 생각하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어머니한테 그것의 사용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사내가 아니라 외할머니였다. 세탁기가 놓인 곳은 좁다란 마당 한 귀퉁이, 내 방과 바로 붙어 있는 화장실 겸 세면실이었다. 겨울에는 창과 문 틈새를 비닐과 문풍지로 꼭꼭 여며두어도 한파가 닥치면 모든 게 곧잘 얼어붙곤 하던 곳이었다. 집 안에 거기 말고는 둘 만한 자리가 없었다.

창이 없어 불을 켜지 않으면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세탁기 앞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나란히 서 있는 뒷모습을 나는 멀찍이 밖에서 열린 문틈으로 신기한 듯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제 딸한테 부지런히 세탁기 사용법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모녀의 체형이 하도 비슷해 어느 쪽이 할머니고 어느 쪽이 어머니인지 얼른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어머니는 어느새 외할머니를 그토록 닮아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옛날 사진 속 어머니는 날씬했는데, 언제부터 저렇게 된 것일까. 세상의 모든 딸들은 어찌 되었든 마침내 제 어머니를 닮고야 마는 것일까. 무엇이 저 두 여인의 몸을 저렇게 만든 것일까.

그때부터 나는 거의 날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공부할 때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나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높고 무거운 소리, 굵고 거친 소리가 대중없이 마구 뒤섞인 소리였다. 어머니는 마치 밀린 빨래 몇 달 치를 작정하고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듯했다. 손으로는 할 수 없어서 어딘가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묵은 빨랫감을 세탁기를 들여놓은 김에 모조리 해치울 속셈이 아닌가 싶기까지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듣고 싶은 게 아닐까. 그 소리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탁기가 그 힘든 빨래를 대신해준다면 새로 그만큼의 여유가 생겼을 테고, 그 시간에 얼마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터였다. 한데도 어머니는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줄곧 세탁기가 놓인 곳에만 머물렀다. 세탁기 소리가 하도 커서 그곳에서 어머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직접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방 안에 앉아 있으면서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온몸의 감각을 귀, 그 한 곳에만 온전히 그러모았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라디오 방송으로 나오는 오케스트라 음악을 집중해서 들을 때처럼. 나는 악기 하나하나의 음색을 낱낱이 구분해 내려는 알뜰함으로 그곳에서 세탁기 소리에 섞여 혹시라도 들려오는 다른 소리가 있을까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내 청력이 믿을 만하다면,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면 세탁기 소리에 섞여서 들려오는 것은 어머니의 울음소리였다. 숨죽인 울음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보다 커서는 안 되겠기에, 있는 힘을 다해 억누르는 울음소리. 슬프지 않았다. 불쾌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우울했을 뿐이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이상한 우울이었다. 앙가슴에서부터 서늘한 기운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스멀스멀 퍼져 나가는, 즉물적으로 징그러운 감각. 그 소리를 듣는 동안 내 몸은 그렇듯 속절없이 자꾸 식어만 갔다. 문득 생각했다. 흡혈귀한테 목덜미를 물려 속절없이 더운 피를 잃어가는 과정이 꼭 이렇지 않을까.

나는 그걸 끝내 소리로만 들었다.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귀를 틀어막았다. 아버지는 저 소리를 못 들을 것이다. 아버지 들으라고 우는 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들어야 할 울음소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내를 숨죽여 울게 만드는 남편은 나쁘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아가 나쁜 남편은 곧 나쁜 아버지다. 나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무슨 변명이 더 필요한가.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한가.

덜컹 현관문이 열린다. 아버지다. 어디 산책이라도 다녀오는 모양이다. 자주 나간다. 예전에는 없던 일이다.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이라도 하려는 뜻은 아니다.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다. 알 수 있다. 나를 위한 배려다. 하루 종일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아버지. 그게 내 기억 속의 아버지다. 사표를 집어던지고 돌아온 다음부터 아버지는 줄곧 집구석에 틀어박혀 지냈다. 도무지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침에 학교에 갈 때 아버지는 자리에 누워 있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와 보면 아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 모양 그대로 누워 있었다. 무슨 죽을병에 걸린 환자처럼. 그 똑같은 장면이 그 순간 내 눈에는 너무도 낯설고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런 날이 적지 않았다. 아버지는 꼭 마음껏 잠을 잘 목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것 같았다. 그러다 해가 지면 어슬렁거리고 일어나 어김없이 책상머리로 기어갔다. 그때부터 밤새도록 담배 연기를 뻑뻑 뿜어내며 원고를 붙잡고 앉아 있는 것이다. 소설이라도 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하는 일은 기껏해야 남이 써놓은 글을 손질하는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그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의 아버지를 어지간히 예술가에 가까운 존재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어쩌면 애써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아버지의 행악을 그나마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자욱한 담배 연기, 수북이 쌓인 꽁초들, 어지러이 널려 있는 원고 뭉치, 만년필, 잉크병…….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작가들의 이미지와 아버지의 모습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실제로 어딘가 방송국의 라디오 드라마 대본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어 번역도 했고, 아이들이 읽는 책도 숱하게 썼다. 하지만 그 가운데 아버지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간 것은 몇 되지 않는다. 나는 자기 이름으로 나가지도 않는 글을 쓰는 아버지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기가 쓰지도 않은 책에 자기 이름을 붙이도록 내버려 두는 세상의 한다 하는 작가들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뒤로 나는 누가 어떤 책을 썼다는 말을 선뜻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나아가 세상이 온통 허위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더불어 아버지의 존재가치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그때는 그래도 아버지를 약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언가 대단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 한 귀퉁이에 분명히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실은 짐짓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였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조사를 할 때 나는 아버지를 단순히 회사원으로만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아버지는 회사원이 아닐 때가 많았으니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저술가 항목에 동그라미를 쳤다. 아버지가 어떤 책을 썼느냐고 담임선생님이 물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것 말고는 아버지를 적확하게 설명해 주는 직업을 찾을 도리가 없었다. 아버지는 의사도 판검사도 아니었고, 교사도 공무원도 아니었다.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농사를 짓지도 않았다. 배우나 탤런트는 더더욱 아니었고, 영화감독이나 방송국 PD나 신문사 기자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소설가도 시인도, 그 흔해 빠진 작가 나부랭이도 아니었다. 그럼 백수나 실업자? 그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출근을 하든 집에만 있든 늘 일을 했으니까. 답은 하나뿐이었다. 저술가. 아버지는 저술가여야만 했다. 아니, 저술가라도 되어야 했다. 저술가, 참 편리한 이름이었다. 어째서 그런 것이 조사서의 직업 예시 란에 들어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행이라면 그것도 다행이었다. 회사에도 나가지 않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담배 연기만 뿜어대며 원고 뭉치와 씨름하는 아버지를 경멸하면서도 나는 기어이 아버지를 저술가라고 규정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다른 항목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이상한 아집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아버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셈이다. 아버지의 행악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만이,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자각하고 있는 사람만이 저지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버지의 행악은 계속될 터였다. 그러니 아버지의 행악을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는 셈이었다, 아버지 스스로에게조차도.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그 헛된 싸움에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라는 위인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었고, 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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