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학이독지 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 / 《논어》 〈자장〉 제6장
經(경)17. 열심히 공부하여 어진 사람이 되거라 / 博學而篤志(박학이독지) 切問而近思(절문이근사) 仁在其中矣(인재기중의) - 《論語(논어)》 〈子張篇(자장편)〉 제6장
저한테는 논어 전체를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감동적인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공자님 말씀이 아니라, 자유(子游)와 더불어 문학(文學)이 그 특장이었던 자하(子夏)라는 제자의 말입니다. 그래서 ‘孔子曰(공자왈)’이 아니라, ‘子夏曰(자하왈)’로 시작하지요.
《論語(논어)》 〈學而篇(학이편)〉 제7장의 ‘賢賢易色(현현역색)’ 운운하는 유명한 말을 남긴 인물이 바로 자하입니다.
자하(子夏)는 성(姓)이 ‘복(卜)’이고 이름(名)이 ‘상(商)’인 복상(卜商)의 자(字)입니다.
끊어 읽기는 ‘박학이/독지, 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 정도로 하면 되겠습니다.
번역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은데, 두 가지 모양새로 할 수 있어서 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널리 배우고 단단히 마음먹으며,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
이 문장 번역의 열쇠는 ‘博學(박학)’과 ‘篤志(독지)’와 ‘切問(절문)’과 ‘近思(근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각각의 앞 글자를 부사로, 뒷글자를 동사로, 곧 ‘부사+동사’ 형태로 보고 번역한 것입니다.
반대로, 앞 글자를 동사로 뒷글자를 명사로, 곧 ‘동사+명사’ 형태로 보고 번역하면 다음과 같은 정도의 문장이 됩니다.
‘배움(배우기)을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돈독히) 하며, 묻기를 간절히(절실히) 하고, 생각을 가까이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
한데, 보통은 앞의 둘은 ‘동사+명사’ 형태로, 뒤의 둘은 ‘부사+동사’ 형태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이렇게 되겠지요.
‘배움(배우기)을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돈독히) 하며, 간절히(절실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
왜 이렇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 문장 안에서 이렇듯 두 가지 모양새를 섞어서 번역하지 말고 똑같은 문장 구조로 일관성 있게 번역해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부사+동사’ 형태로 시작했으면 끝까지 ‘부사+동사’ 형태로, ‘동사+명사’ 형태로 시작했으면 끝까지 ‘동사+명사’ 형태로 번역하라는 것이지요. 적어도 한 문장 안에서는 그래야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부사+동사’ 형태로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해서 번역한 것입니다.
제가 ‘동사+명사’ 형태가 아닌 ‘부사+동사’ 형태로 번역하기를 선택한 것은 이 또한 글자의 출현 순서대로 새기고 번역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문장이 겨냥하고 있는 의미입니다.
‘박학’, ‘독지’, ‘절문’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의미 파악이 되는 단어들입니다. 모름지기 공부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편협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널리 배워야(博學) 하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공부하기 위해서는 뜻을 굳게 세워야(篤志) 하며, 모르는 것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질문해야(切問) 합니다. 그것이 모름지기 공부하는 사람의 마땅한 자세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近思(근사)’는 그 의미가 얼른 와 닿지 않습니다. ‘가까이 생각한다’라고 해도 어딘가 애매모호한 느낌이고, ‘생각을 가까이한다’라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는 전통적인 해석에 기대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문에서는 이런 식으로밖에는 배워 익힐 수 없는 의미의 단어나 글자들이 매우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자 한 자 한 자의 의미를 바탕으로 자의적인 해석을 할 경우 핵심을 비껴갈 위험이 곳곳에 늘 도사리고 있는 것이 한문이니까요.
이 ‘近思(근사)’에서 문제가 되는 글자는 ‘思(생각할 사)’자가 아니라, ‘近(가까울 근)’자입니다. 생각하되 ‘가까이’ 생각한다는 것이, 또는 생각을 ‘가까이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예, 이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망상이나 공상을 하면 곤란하다는 뜻으로 쓰인 어휘입니다. 자유롭고 진취적인 사유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상상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배우는 사람은, 따라서 배움이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사람은 현실에 발붙이고서 구체적인 사유를 할 줄 아는 게 우선이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한다는 뜻 정도로 보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어느 분야건 배움에는 단계가 있지 않습니까. 그 단계 하나하나를 순서대로 착실히 충실하고 어김없이 탄탄하게 밟아나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데 누가 딴지를 걸겠습니까. 아무리 만인지상의 타고난 천재라 한들 누구 말마따나 인수분해도 못 하면서 덜컥 미적분을 공부할 수는 없는 일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저 여기까지라면 이 자하의 말은 공부 일반에 널리 통하는 말은 될지언정, 《論語(논어)》라는 책에 실릴 만한 가치 있는 문장은 못 될 것입니다. 제 생각에 마지막의 ‘仁在其中(인재기중)’이 자하의 이 말 전체를 살렸습니다. 인이 그 가운데 있다―.
앞의 네 가지, 곧 ‘博學(박학)’, ‘篤志(독지)’, ‘切問(절문)’, ‘近思(근사)’를 열심히 충실하게 하면, 그러니까 그런 자세와 태도로 열심히 공부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진 사람, 인한 사람, 곧 ‘仁者(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 가고,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의 세태에 비추어 보면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하는 분명히 말합니다. 그 가운데 좋은 대학, 전문직, 출셋길, 부귀영화 따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仁(인)이 있다고요. 저한테는 이 말이 참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문제는 ‘공부’의 의미입니다. 수능 공부, 고시 공부, 공무원 시험 공부, 기타 온갖 종류의 자격증을 위한 공부 따위는 실은 진정한 의미의 공부가 아닌 것입니다. 진리 탐구가 아닌 공부는 공부가 아닙니다. 그건 그냥 기예의 훈련일 뿐입니다. 그런 것들을 싸잡아 공부라고 부르니, 언젠가부터 공부가 직업을 얻기 위한,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출세와 부귀영화와 명예와 영광을 위한 실용적인 노력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리 탐구를 위한 박학, 독지, 절문, 근사가 진정한 공부이고, 그런 진정한 공부를 하면 어진 사람, 仁者(인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자 따위는 관심 없다는 사람에게 이런 말, 이런 문장은 그야말로 쇠귀에 경 읽기일 테지요.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공부가 아닌 공부’를 열심히 잘 한 사람들의 저 ‘어짊(仁)’과 ‘너무나 거리나 먼’ 행태들을 ‘너무나 흔히’ 목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仁在其中(인재기중)’은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당위의 언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반드시 仁者(인자)가 되어야 한다―. 출세하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仁者(인자)가 아니면 어김없이 백성을 고생시키게 마련이니까요.
지금 현실의 세태야 어떻든, 《논어》 속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자하가 한 이 한마디 말의 엄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 이 말의 도저한 감동을 저는 도저히 저버리지 못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