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D장조 LP
♬4. 레너드 번스타인의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D장조 LP / 연주 – 파리 국립 오케스트라 / EMI
저는 교향곡의 역사에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베토벤의 〈영웅교향곡〉 못지않게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합니다.
동시에 또 그만큼 좋아하고요.
형식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환상교향곡〉은 베토벤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로부터 벗어난 거리만큼이나 베토벤으로부터 많이 벗어난 느낌입니다.
〈환상교향곡〉이 세상에 나온 것은 1830년. 이는 놀랍게도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인 〈합창교향곡〉이 세상에 나온 1824년에서 불과 6년 뒤입니다.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1827년에서는 고작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지요.
〈환상교향곡〉은 베토벤이 고전주의의 문을 닫고 낭만주의의 문을 열어젖힌 뒤에 일어난 또 한 번의 변곡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예술적인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정말 빠르지요?
저는 이 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스탕달의 장편소설 《적과 흑》이 떠오르는데, 이는 그만큼 〈환상교향곡〉이 그와 비슷한 정도의 강렬한 스토리텔링의 토대 위에 놓인, 말하자면 서사성이 매우 강한 교향곡인 탓이 아닐까 싶어요.
1악장 ‘꿈, 정열’, 2악장 ‘무도회’, 3악장 ‘전원의 풍경’, 4악장 ‘처형장을 향한 행진’, 5악장 ‘마녀의 축연’ 등 각 악장의 표제는 속절없이 장편소설의 각 챕터를 연상시킵니다.
전체 5악장 구성도 베토벤이 〈전원교향곡〉에서 이미 시도한 바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교향곡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볼 때 역시 흔한 사례는 아닙니다.
저는 이 교향곡의 명연 여부를 2악장 ‘무도회’와 마지막 5악장 ‘마녀의 축연’ 부분을 어떻게 연주하느냐를 기준으로 따집니다.
물론 저만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기준이고 취향이지만, 윤택하고도 강렬하다는 점에서 저는 특히 샤를르 문슈와 삐에르 불레즈의 지휘를 매우 좋아합니다.
베를리오즈가 프랑스 사람이어서인지, 공교롭게도 둘 다 프랑스 출신 지휘자들이네요.
이것은 차이코프스키의 경우에 같은 러시아 출신인 예프게니 므라빈스키의 지휘가, 드보르자크의 경우는 같은 체코 출신의 바츨라프 노이만의 지휘가 발군인 것과 얼마간 궤를 같이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환상교향곡〉 LP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것이 유일합니다.
지휘자는 미국인인 번스타인이지만, 연주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인 탓일까요.
이 또한 상당히 마음에 드는 연주입니다.
1918년생 번스타인이 59세 때인 1977년에 녹음한 판이지요.
지휘자로서는 매우 완숙하다고 할 수 있는 시기라서 더욱 연주가 잘 나오지 않았나, 하고 넘겨짚어 봅니다.
번스타인과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괜찮은 조합이라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이 〈환상교향곡〉에서만큼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