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2. 산다는 건 마지막이므로 살자, 살아보자

- 김중식, 《울지도 못했다》

by 김정수

P32. 산다는 건 마지막이므로 살자, 살아보자 – 김중식 시집, 《울지도 못했다》(문학과지성 시인선 513, 문학과지성사)

시인의 독려가

사뭇

뜨겁습니다.

산다는 건 마지막이므로 살자, 살아보자’라는 독려가요.

가끔 생각합니다.

살아야 한다는 당위가

없이는

살 수가 없지 않나, 하고요.

그러니

시인의 ‘살자, 살아보자’라는 독려가

귀하게 다가옵니다.

아니,

필요합니다.

아무리 ‘속으로 화상 입은 청춘’이어도

그 화상의 아픔을

견디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여 ‘하루는 길지만 인생은 짧은 것’이라는

시인의 역설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게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아지지 않나요?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보내노라면

어느덧

훌쩍

세월이

흘러버린 사실을요.

그렇게 흘러버린 세월 동안

어떻게든

살았다는 것을요.

하면,

그 짧은 인생을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은

죄일까요.

시인은 고백합니다.

신이 내 죄를 안다면 용서할 수 없으리라’라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마

용서받을 수 없을 겁니다.

신이

모를 턱이

없을 테니까요.

한데,

시인은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시인’도 빨리 발음하면 ‘신’이 되므로.’라고요.

예,

신이 모를 리가 없는 것을

시인도 모를 리가 없다는 말을

바야흐로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시인은

신의 권위로,

아니,

시인의 권위로

자신 있게 단정합니다.

후회 없는 삶은 없고 덜 후회스런 삶이 있을 뿐’이라고요.

요컨대

우리네 삶에

후회란

기본값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후회를,

아니,

후회마저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마침내 시인은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먹고산다는 건 한 끼 한 끼가 빅뱅’이라고요.

더러운 세상을 피해 다녔으나 더러운 세상을 버릴 수 없’었다고요.

왜냐고요?

예,

살아야 하니까요.

그게 당위니까요.

가볍게 살아도 생은 무겁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요.

살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예,

나도 살아야겠습니다.

그러니,

당신들도 살아야 합니다.

왜냐고요?

살아야 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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