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61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61

by 김정수

CA301. 베티 토마스, 〈아이 스파이〉(2002)

저 ‘원더우먼’의 투명 비행기 아이디어. 〈닥터 두리틀〉(1999)로 에디 머피를 재기시켰던 감독 베티 토마스. 콘택트렌즈를 통한 첩보원끼리의 화상 교신 아이디어. 여기서 에디 머피와 오웬 윌슨은 〈쇼타임〉(2002, 톰 데이)의 에디 머피와 로버트 드 니로와는 또 다른 성격의 흥미로운 조합이다. 그런데 왜 하필 에디 머피가 권투선수여야 하지?


CA302. 이타미 만사쿠, 〈아카니시 가키타(赤西禲太)〉(1936)

스파이 영화가 멜로 영화가 되는 이야기 구조의 변화가 흥미로운 소극(笑劇). 에도 시대에 후계자 책봉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센타이 다데 가문. 그 갈등의 내막을 알아내고자 본가에서 정탐꾼을 파견한다. 물론 그는 제 신분을 속인 채 잠입해야 한다. 임무를 다하고 이제 돌아와야 하는데, 이 자는 자기가 갑자기 사라지면 의심받을 것을 염려하여 속절없이 떠나야만 하는 구실을 찾는다. 이 방법으로 연애편지를 쓴다는 설정―. 연애편지를 써서 그것이 탄로 나 창피해지면 그 창피함을 면하기 위해 도망치는 것으로 한다는 계획의 어처구니없음. 그럼 자연스레 그곳을 떠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아무의 의심도 받지 않고. 하지만 이 계획은 틀어진다. 연애편지를 받은 당사자인 여자가 그만 그 편지에 진짜로 감화를 받아 사랑에 빠지는 것. 우여곡절 끝에 둘은 이어진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과 베토벤 교향곡 제2번, 그리고 바그너의 ‘결혼행진곡’ 따위가 배경음악으로 적재적소에 쓰인다는 점. 더불어 트래킹과 부감 쇼트 따위의 다양한 카메라 워크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1936년에!


CA303. 끌로드 샤브롤, 〈악의 꽃〉(2002)

그 남자는 왜 살해되었는가. 결국 모든 것은 윤리·도덕과 관계가 있다. 기독교 문명권에서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부도덕했고, 비윤리적이었다. 난잡했고, 무분별했다. 인과응보인 셈이다. 하지만 그 남자를 살해한 여자는? 그 여자도 도덕적이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진정한 금기를 어긴 것은 그 여자다. 그 여자가 살인자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게 되는 것은 결국 더욱 큰 징벌일 수도 있다. 레지스탕스 시절까지 거슬러 오르는 영화 속 회상은 어쩌면 프랑스의 현대사 전체가 바로 그런 부도덕과 비윤리 위에 세워진 것임을 비판하는 의미일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정서적 밀도가 높은 대목이 노파가 회상에 빠져드는 장면인 것은 그 때문이다. 결국 그토록 아름다운 꽃도 악에 뿌리를 박고, 그 악에서 자라난 것이라는 이 통렬한 선언.


CA304. 변장호,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람〉(1969)

하녀의 복수극. 한 여인(김지미)이 자신을 유린한 노인(정민)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 부자(父子) 모두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야기. 전반부는 이 가정부의 요부 또는 팜므 파탈 이미지가 미스터리 구도 속에 인상적으로 구현되며, 후반부에서는 노인의 아들(오영일)과의 로맨스를 한 축으로 복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복수를 끝낸 뒤 이 여인이 인생의 허망함을 깨닫고 했던, 저 여자로서의 정체성 운운하는 독백은 차라리 삭제했더라면 영화의 여운이 훨씬 더 깊이, 오래가지 않았을까. 이 지점에서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 멜로가 된다. 외도로써 어머니를 괴롭히고, 급기야는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이 아들은 자신의 신분을 가벼이 여기고, 마침내는 약혼까지도 파기하기에 이른다. 복수하러 들어온 가정부와의 로맨스 설정도 다분히 반항적이어서 눈에 띈다.


CA305. 이규웅, 〈암행어사 박문수〉(1962)

이 영화를 스펙터클로 만든 데에는 분명 〈춘향전〉에 대한 강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전반부는 너무 길고 후반부는 성급하다. 이제나저제나 박문수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로 임명되기를 바라는 관객은 기다리다 지친다. 막상 박문수가 장원급제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폭도들의 진압이다. 암행어사로서의 활약상은 맨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그것도 〈춘향전〉 식의 극 중 상황이 조성되고 나서야 이루어진다. 박문수 스토리는 셜록 홈스식으로 풀어가야 할 소품용 스토리임을 이로써 알 수 있다. 동시에 〈춘향전〉의 허구성도 완연히 드러난다. 한데, 이 암행어사 박문수 캐릭터가 우리 영화에서 왜 이렇게 무시되고 있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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