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62
CA306. 스티븐 헤렉, 〈어느 날 그녀에게 생긴 일〉(2002)
자기 운명을 스스로 알게 된다는 것의 의미는? 그녀가 제 운명을 몰랐더라면 그녀는 과연 어떻게 살아갔을까. 하지만 이 영화는 어처구니없게도 ‘죽음’의 의미를 희화화함으로써 스스로를 한 편의 평범한 멜로드라마로 축소시킨 느낌이다. 세상에, 그녀는 진짜 자신이 죽는다고 믿었지만, 예언된 죽음의 의미는 거듭남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이 정확한 의미를 그녀가 알았더라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아마 ‘뜨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CA307. 알렉산더 페인, 〈어바웃 슈미트〉(2002)
인생의 외로움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저 지극히 상투적이면서도 온당한 전언. 고독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비결. 모두가 떠난 뒤 혼자 남은 슈미트에게는 오로지 자신이 현재 어딘가에 기부금을 보내고 있다는 경험만이 유의미할 뿐이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그에게 응답해 오지 않는다. 자신이 베푼 사랑의 흔적만이 그에게 메아리로 돌아올 뿐. 열심히 일하는 것도,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그 돈으로 여행을 가는 것도, 그런 여가 시간을 선용하는 것도 결국은 사랑을 베푸는 것보다 낫지는 못하다. 이는 분명 영원한 진리지만, 너무도 명백한 진리기에 그것의 진리다움은 늘 은폐되기 일쑤다. 그래서 사람들은 머릿속으로만 사랑의 의미를 알 뿐, 몸으로 실천하지는 못한다. 외로움은 그 탓이다. 오로지 베푼 것만이 남는 법이니까.
CA308. 브라이언 싱어, 〈엑스맨 2〉(2003)
〈볼링 포 콜럼바인〉(2002, 마이클 무어)을 보고 나서 이런 영화를 보면 모든 것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진다. 미국의 총기 콤플렉스의 딱한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탓이다. 침입자와 그에 대항하여 집과 가족을 지키려는 자 사이의 지극한 적대감. 마이클 무어에 의하면 이 적대감도 결국은 공포에 기반한 것이다. 소수의 이질적인 요소에 대한 다수의 거부감도 그냥 일개 편의적인 주제에 불과하다.
CA309.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엘 토포〉(1970)
서부영화는 왜 끊임없이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리메이크되는 걸까. ‘그곳’은 분명히 서부영화의 공간, 곧 ‘서부’가 아님에도. 이 영화에서 내게는 오로지 이것만이 이상하다.
CA310. 스와 노부히로, 〈M/OTHER〉(1999)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도 한 아이의 엄마도 아니다. 그녀는 그저 그녀일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저 그녀일 뿐인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일이 있고, 그것은 그녀가 한 남자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훨씬 더 그녀를 그녀이게, 또는 그녀답게 하는 비결이다. 영화는 이 그녀가 그녀이고자 하는 일종의 투쟁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약간의 갈등과 심각한 위기 국면이 있지만, 그것을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이 영화만의 강점 아닐까. 결국 모든 것은 어찌 되었든 계속 공존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삶의 진짜배기 모습이기 때문이다. 파국은 쉽지도 않을뿐더러,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것을 기도(企圖)한다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그 기만을 넘어버리지 못하도록 묶어 두는 데 성공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