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63
CA311. 나루세 미키오,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
밑바닥 인생, 끝없는 배신. 그럼에도 그녀는 꿋꿋하게 삶을 계속해 나간다. 전후(戰後) 일본인들의 삶에 대한 의지, 또는 그 의지에 대한 염원을 엿볼 수 있는 작품. 하지만 왜 하필 현대판 게이샤인가. 계단 이미지의 줄기찬 반복. 그녀는 언제나 계단을 오르지, 결코 내려오지는 않는다. 이것이 중요하다.
CA312. 이한, 〈연애소설〉(2002)
사랑과 우정은 어쩌면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닌 걸까. 이 두 개념의 차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지극히 억지스러운 과정이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지도 모른다.
CA313. 허우 샤오시엔, 〈연연풍진(戀戀風塵)〉(1986)
그들은 왜 헤어져야 했을까. 아니, 그녀는 왜 그를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을까. 근대화의 과정에서 생활의 근거를 잃어버린 남녀는 끝내 결합할 수 없었다는 것.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사코 희망을 찾으려 애쓰지만, 그들에게 남는 것은 이별뿐이다. 그들의 결합을 보증해 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제대하여 고향에 돌아온 그는 이제부터 그녀가 없는 세상을 홀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삶은 또 역시나 그렇게 계속되는 것이다.
CA314. 오시마 나기사, 〈열정의 제국(愛の亡靈)〉(1978)
제목을 ‘열정의 제국’으로 지은 것은 〈감각의 제국〉(1976)의 명성에 편승하자는 얄팍한 장삿속의 결과였을까. 물론 이는 프랑스어 제목(L'Empire de la Passion)을 직역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본어 제목 ‘사랑의 망령’이 더 적절한 듯. 한순간의 정념을 다스리지 못하여 벌어지는 비극. 결국 모두가 죽어야만 하는 비극으로 치닫는 운명의 장난. 억울하게 죽어 한을 품은 귀신은 뚜렷한 복수의 의지를 벼리지 않더라도, 단지 산 자들 앞에 나타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들을 죄의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구실을 하게 되며, 그 결국은 가차 없는 파멸이다. 그 남편의 귀신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부정한 아내와 그녀의 정부한테 복수한 것이다.
CA315. 벤자민 크리스텐센, 〈영원한 마법〉(1922)
중세가 암흑기였던 것은 순전히 기독교 탓이다. 더 정확히는 기독교의 못된 성직자들 때문이다. 그들이 모든 것을 망쳤다. 그들이 기독교에 대한 유구한 반감의 원천을 조성해 놓았다. 마녀사냥은 코미디다. 그래서 더욱 비극적이다. 늙고 못생긴 노파로 사는 것은 위험하지만, 젊고 예쁜 것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더 위험하다. 노파는 가차 없이 마녀로 몰리고, 젊고 예쁘다는 것도 성직자를 음욕에 빠트린다는 죄목으로 마녀로 몰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신체 조건이었다. 거대한 위증과 사기의 시대. 그것이 중세 기독교 시대다. 그러니 꿈을 마녀의 저주로부터 해방시킨 프로이트의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