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단조 LP
♬7. 에밀 길렐스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단조 LP / 지휘 – 로린 마젤, 연주 –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래전 독일에 갔을 때 베를린의 한 변두리에서 열린 도깨비시장을 구경하며 거닐다가 문득 발견해 얼른 구입한 음반입니다.
당연히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니, 제 눈에 띄지 않을 턱이 없었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온전히 검은색 표지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조금은 더 정확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그 순간 이 음반의 검은색에 덜컥 매료되었습니다.
보자마자 저는 검은색이 차이코프스키와, 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빛깔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지금이라면 ‘차이코프스키의 퍼스널 컬러가 검은색이구나!’ 하고 생각했겠지요.
제가 꽤나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인 에밀 길렐스, 그리고 언젠가 북한에도 가서 공연을 했던 지휘자 로린 마젤 콤비입니다.
1972년 스테레오 녹음인데, 앙상블이 상당히 괜찮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로린 마젤은 제가 좋아하는 지휘자는 아니지만, 에밀 길렐스와 협연한 이 차이코프스키는 마음에 듭니다.
얼마간 모순 어법의 느낌이 있지만, 울림이 큰 절제의 연주라고 하면 될까요.
커버 뒷면에 악보가 인쇄되어 있는 것도 이채롭네요.
그동안 어떤 독일인이 이 음반으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열심히 들었으리라는 상상을 해보면 감흥이 남달리 깊습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어떠 독일인이 애지중지 듣던 음반을 세월이 흘러 한국인이 다시 듣고 있는 느낌은 어쩐지 음악만이 빚어낼 수 있는 연대감으로 제 가슴을 훈훈하면서도 애잔하게 적시고 듭니다.
발매된 뒤로, 또 어떤 독일인이 듣기 시작한 뒤로 무려 반세기가 넘어서 무척이나 낡은 음반을 한국인이 듣는 감흥―.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1916~1985), 프랑스 출신의 지휘자 로린 마젤(1930~2014), 연주는 영국의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그리고 이 음악을 들었을 어느 독일인(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요)과 그걸 지금 듣는 지금의 한 한국인. 그리고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음반 하나에 세계가 통째 다 들어 있는 형국이네요.
예,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 또는 음악의 기적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