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발터 기제킹의 베토벤 ‘황제’ 협주곡 LP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LP

by 김정수

♬14. 발터 기제킹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Eb장조 ‘황제’ LP / 지휘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연주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 Columbia

스테레오 시대로 넘어오지 못한 채 모노 시대에 세상을 떠난 지휘자나 연주자에 대하여 저는 언제나 안타까움과 더불어 깊은 애정을 느낍니다.

1956년에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발터 기제킹도 바로 그런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한 명이지요.

그의 연주를 스테레오 녹음으로 듣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쉽지만, 제가 언제나 주장하듯, 모노 녹음 특유의 고전적인 품격이 자잘한 기교에 치우치지 않는 그의 굵으면서도 섬세하고 세련되고 담백한 한 편의 에세이와도 같은 느낌의 연주 스타일과 잘 어우러져 그의 연주가 더욱 빛난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외려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의 엄혹한 시기에 모노 녹음 음반을 턴테이블 위에 고이 올려놓고 바흐를, 모차르트를, 베토벤을, 슈베르트를, 쇼팽을, 브람스를, 차이코프스키를 몰래 혼자서, 또는 작은 공간에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가만히 귀 기울여 들으며 깊이 위로받았을, 그 시대의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을 생각하면, 또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문득 목격할 때면 저는 속절없이 콧날이 시큰해지면서 어떤 연대감으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이것이 제가 오래되고 투박한 모노 녹음 음반들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의 하나입니다.

이 음반은 1951년, 기제킹이 56세, 카라얀이 43세 때 협연하여 녹음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 Eb장조 ‘황제’입니다.

연주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오토 클렘페러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라는 점도 이채롭네요.

카라얀이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가 된 것은 푸르트벵글러가 세상을 떠난 뒤인 1955년이지요.

1960년대 이후 ‘녹음의 황제’로 당당히 등극한 ‘신세대’ 지휘자 카라얀의 매우 드물게 만나는 모노 녹음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도 저한테는 귀한 점입니다.

이 음반의 녹음 시점이 기제킹이 세상을 떠나기 5년 전, 카라얀이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가 되기 4년 전이니, 완숙함과 패기의 조화가 돋보이는 ‘황제’ 협주곡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국판의 독일 발매 음반으로, 이 또한 예전에 베를린 변두리의 도깨비시장에서 발견하자마자 ‘얼른’ 구입했던 음반입니다.

커버 앞면 오른쪽 맨 위에 자그마하니 붙어 있는 ‘3.50’ 유로라는 가격표가 이제는 추억이 된 그때의 가슴 설레던 정경을 새록새록 떠올려 주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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