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민, 《해는 요즘도 아침에 뜨겠죠》
P42. 한 접시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슬픔이어서 – 박승민 시집, 《해는 요즘도 아침에 뜨겠죠》(창비시선 508, 창비)
시인은 고백합니다.
‘한 접시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슬픔이어서’
마침내,
기어이
‘버렸던 신을 또 찾아간다’라고요.
그렇습니다.
우리네 슬픔도
시인처럼 고작
‘한 접시’만 가지고는
그 양이나 크기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그렇기에 시인은
이미 한 번 ‘버렸던 신’ 앞으로
다시 나아갑니다.
예,
슬픔은
그런 것일 겁니다.
신께 도와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고통,
그것이
슬픔일 것입니다.
시인은
이어 또 고백합니다.
‘밤마다 부서진 신에게 매달린다’라고요.
예,
그 신은
‘부서진 신’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시인이 ‘버렸던’ 것처럼
수없이 버려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신이지만,
결국은 그 신께
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연약한
인간인 걸까요?
스스로 그런 인간임을
잘 알기에
시인은
자신을 가차 없이
이렇게 규정합니다.
‘나는 나에게서조차 떠나야 할 사람’이라고요.
떠난다는 것은 곧
버린다는 뜻 아닐까요.
예,
시인은 스스로를
버려야 할 존재로
인식한 것입니다.
그 정도로
시인의 슬픔은
극한의 것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런 극한의 슬픔에
시달리고 있으니
그 몸이 어디
온전하겠습니까.
시인이
자기 몸을 가리켜
‘자꾸 오작동하는 몸’이라고
하는 걸 보면요.
그렇듯
감당하기 힘든 슬픔 탓에
제구실을 못 하는 몸으로
시인은 아마도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모양입니다.
‘당신이 오지 않아 뛰어내리지 못하네 당신이 올 것 같아 뛰어내리지 못하네’라고
털어놓는 걸
보면요.
그런 시인이
‘버렸던 신을 또 찾아간’ 것을 보면
그래도
‘뛰어내리는 것’이
본뜻은
아니었을 겁니다.
시인은 생각합니다.
‘이 우주 속에는 아무것도 헛되지 않음을’요.
‘먼 우주의 시간 속에는 이 세상 헛되고 헛된 일 없다는 것을’요.
예,
시인은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겁니다.
우리들처럼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우리들처럼요.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순간순간 새로워졌다’라는
시인의 말을
보십시오.
‘새로워졌다’는 건
과거의 자신에게서 떠났다는,
과거의 자신을 버렸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예,
그러고서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서
시인은 드디어
‘아침’을 말합니다.
‘해는 요즘도 아침에 뜨겠죠?’라고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법
아닙니까.
예,
해가 내일 아침 다시금,
어김없이 뜬다는 건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뜻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시인처럼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된 거
아닌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