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우,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
P43. 오래 남겨두고 싶은 순간이었다 – 박성우 시집,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창비시선 507, 창비)
예,
누구한테나
‘오래 남겨두고 싶은 순간’은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유난 떨며 내세울 만한 게 아니어서 유별나게 더 좋은 소소한 풍경’ 같은 것
말이지요.
아니면
문득
‘양손으로 끌어모은 햇볕 한뭉치’에
따뜻이
위로받는 순간
같은 것
말입니다.
또는
‘마음이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아침’과
같은 것
말이지요.
예,
그런 것을
귀하게 여기는
시인이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요.
‘나는 낡고 오래된 풍경이 좋다’라고요.
또는
‘빗소리 더욱 싱그럽다 이 도시에 몸 붙이고 살 만하겠다’라고요.
예,
그런 시인이기에
이런 소원을
품을 수 있는 거겠지요.
‘딸애와 국밥 한그릇 해보는 소소한 소원’을요.
그 ‘소소함’이
참
귀하고 어여쁩니다.
그런 시인이라면
나와 함께,
나처럼
부족함이 많은 사람과
함께
먼 길을
떠나 줄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대에게 빈틈이 없었다면 나는 그대와 먼 길 함께 가지 않았을 것이네 내 그대에게 채워줄 게 없었을 것이므로’라고 하는 걸
보면
더더욱요.
예,
시인은
‘빈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빈틈’을
귀히 여길 줄
아는 것입니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그 누가
나의 ‘빈틈’을 채워주려,
아니,
사랑하려 하겠습니까.
예,
시인은
우리의 ‘빈틈’을,
‘빈틈’이 있는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니,
‘빈틈’이 있기에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합니까.
심지어 시인은
‘빈틈’이라고는 없는
‘아름드리나무’조차도
안고 싶어 합니다.
‘나는 왜 아름드리나무를 보면 안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이는 걸까’라고
하는 걸
보면요.
(‘안아드리고’라는 높임 표현이 참 좋네요.)
나아가
이렇게 우리를
위로하여 주기까지 합니다.
‘누구에게나 한때의 절정은 있다’라고요.
아,
‘한때의 절정’이라도
있군요.
예,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아직도
살아갈 희망이
있는 거겠지요.
‘빈틈’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시인의 말이기에
자칫
영혼 없는 위로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
가슴 속 깊숙이
밀고 들어옵니다.
시집을 읽다 보면
마치
나 한 사람만을 위해 시인이
자기 시를 나지막하니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예,
시인의 말대로입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말대로요.
그래요.
우연이
아닐 겁니다.
우리가 시인을,
시인의 시를
만나는 일이
말입니다.
그래서 시인과,
시인의 시와
만나는 일은 우리에게
운명만큼이나 무겁고
장한 일일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