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전, 〈방김거사야거〉_4
H06. 가을, 벗을 찾아가는 이의 마음 / 鄭道傳(정도전), 〈訪金居士野居(방김거사야거)〉_4
셋째 구는 ‘立馬溪橋問歸路(입마계교문귀로)’입니다.
설 립, 말 마, 시내 계, 다리 교, 물을 문, 돌아갈 귀, 길 로.
역시 다 알 만한 글자들로,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끊어 읽기는 ‘입마/계교/문/귀로’ 정도로 하면 되겠고요.
이 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글자는 ‘말 마(馬)’ 자입니다. 이로써 이 시의 화자가 말을 타고 이 산에 왔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 처음으로 화자 자신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나온 셈입니다.
조선시대에 사대부―정도전이 활약하던 고려말에서 조선 초에 걸친 시기라면 ‘신진사대부’라고 해야겠지요―가 말을 타고 먼 길을 떠났다면 대개는 하인 한 명쯤 대동하게 마련일 텐데, 시 속에 그에 대한 언급은 없네요. 일단 화자 혼자 나선 길이라고 보고 풀어가겠습니다.
한데, 이 ‘말 마(馬)’ 자의 바로 앞 글자가 ‘설 립(立)’ 자네요. 그렇다면 ‘立馬(입마)’, 말을 세우다, 곧 화자가 지금 타고 가던 말의 고삐를 잡아채 멈추어 섰다는 뜻입니다.
이 입(立)자는 ‘앉다’의 반의어로 ‘서다’라는 뜻이 기본이지만, 이는 동시에 ‘멈추다’라는 뜻으로도 새겨지는 글자지요. 우리말 ‘서다’에 ‘일어서다’와 ‘멈추어서다’라는 두 가지 뜻이 다 있는 것처럼요. 우리가 택시를 타고 가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이쯤에 세워주세요”라고 하잖아요?
여기서는 이 ‘설 립(立)’ 자가 ‘말 마(馬)’ 자와 함께 쓰였으므로 ‘멈춰 세우다’라는 의미로 보는 게 맞겠습니다
다음은 ‘溪橋(계교)’입니다. 시내 계, 다리 교. 곧 산속 골짜기의 시내에 걸려 있는 다리입니다. 이걸 앞의 ‘立馬(입마)’와 엮어서 풀이하면, 바야흐로 화자가 타고 가던 말을 시내에 걸린 다리께에서 멈춰 세운 정황입니다.
한데, 바로 다음 글자가 ‘물을 문(問)’ 자고, 그다음이 ‘歸路(귀로)’네요. 합하여 ‘問歸路(문귀로)’, 곧 ‘귀로를 묻다’입니다.
그러니까 화자가 타고 가던 말을 그곳 시내에 걸려 있는 다리께에서 멈춰 세우고는 누군가에게 ‘귀로(歸路)’를 ‘물은(問)’ 것입니다.
아,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화자 말고 또 누군가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화자 혼자가 아니었던 거네요.
지금의 정황이 화자가 다리를 건너기 전인지, 건너고 나서인지에 대해서는 관련 정보가 없어서 다소 어중간하게 ‘다리께’라고 표현했지만, ‘귀로’를 물은 것으로 미루어 건너기 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건너기 전에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물었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닿는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문제는 ‘歸路(귀로)’에서 ‘歸(귀)’ 자입니다. 이 글자는 보통 ‘돌아가다’나 ‘돌아오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지만, 그냥 ‘가다’라는 뜻으로도 곧잘 쓰인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요긴합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이 ‘귀로’를 ‘돌아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 두 가지로만 풀이하고 있지만, 한문에서는 그냥 ‘가는 길’도 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렇게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가는 길’이라고 하는 것이 화자가 벗의 집을 찾아간다는 맥락에 더 잘 어울립니다. 아직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이나 ‘돌아오는 길’을 묻는다고 하면 어딘가 맥이 닿지 않는 느낌이지요?
물론 ‘김거사’의 ‘야거’를 방문한 뒤에 돌아가는 길이라면, 산속 초행길이라 어떤 길로 왔는지 기억이 분명치 않아 확인차 물었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럼 이 시 전체의 정황을 거기에 맞추어서 다시 해석하고 번역해야 합니다. 문제는 제목입니다. 무엇보다도 제목이 ‘김거사의 야거를 방문하다’지, ‘김거사의 야거를 방문하고 돌아가(오)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로’를 ‘가는 길’로 보면, 화자가 묻는 상대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는 길’을 물은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이 다리께에서 길이 갈라지는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 시대 산속 갈림길에 무슨 정확한 이정표가 친절하게 세워져 있지도 않았을 터이니, 낯선 곳의 초행길인 나그네의 처지로 충분히 헤아려지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화자는 이 순간 살짝 당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 길이 맞는지 알 수 없는 갈림길이 나왔으니까요. 하지만 때마침 누군가가 나타나 벗의 집으로 가는 길을 물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웠겠습니까. 화자는 살짝 당황했던 만큼, 또 살짝 안도하지 않았을까요. 예, 때맞춰 나타나준 상대가 썩 반가웠을 것입니다.
화자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정보를 은근히 우리에게 알려주는 구입니다.
전체가 네 구인 칠언절구가 아니라, 여덟 구인 칠언율시였다면 아마 조금 더 다양한 정보들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텐데,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시가 꽤나 번잡한 느낌이었을지도 모르니, 그리 아쉬울 건 없다고 해야 더 옳겠지요?
역시 ‘기승전결’에서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전’에 어울리는 구답게 앞의 두 구와는 분위기가 한결 달라진 느낌입니다.
이제 이 셋째 구 전체를 번역하면 이런 정도가 되겠습니다.
‘말을 시내의 다리께에 세우고 가는 길을 묻다.’
다음 글에서 마지막 넷째 구를 살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