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05. 가을, 벗을 찾아가는 이의 마음

- 정도전, 〈방김거사야거〉_3

by 김정수

H05. 가을, 벗을 찾아가는 이의 마음 / 鄭道傳(정도전), 〈訪金居士野居(방김거사야거)〉_3

둘째 구는 ‘落葉無聲滿地紅(낙엽무성만지홍)’입니다.

‘떨어질 락, 잎 엽, 없을 무, 소리 성, 찰·가득할 만, 땅 지, 붉을 홍.’

다 그리 어려운 글자는 아니고, 끊어 읽기도 ‘낙엽/무성/만지/홍’ 정도로 수월하게 됩니다.

따라서 언뜻 보면 쉽게 번역할 수 있을 듯하지만, 막상 하려고 들면 번역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한문 문장에서는, 더욱이 한시에서는 이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역자(譯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저는 이런 경우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설사 그 결과가 결국은 마찬가지라고 할지라도요.

맨 앞의 ‘落葉(낙엽)’부터가 그렇습니다.

‘葉(엽)’ 자야 ‘잎’이라는 뜻의 명사니까 별문제가 없지만, 그 바로 앞의 ‘落(낙)’ 자는 과거형으로 ‘떨어진’이라고 할지, 현재 또는 현재진행형으로 ‘떨어지는’이라고 할지, 앞뒤 맥락을 따져서 결정하거나, 자기 느낌을 따라서 선택해야 합니다. 아니면, 뭉뚱그려서 그냥 ‘낙엽’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실제로 ‘낙엽’은 국어사전에도 버젓이 올라 있는 낱말이지요.

이 구의 경우는 ‘落葉(낙엽)’ 뒤의 ‘無聲(무성)’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뒤의 ‘聲(성)’ 자는 ‘소리’라는 뜻의 명사라서 크게 고민이 되지 않지만, 글자의 순서를 존중할 때, 앞의 ‘無(무)’ 자는 뒤의 명사인 ‘葉(엽)’ 자를 꾸며주는 관형사로 보면 ‘없는 소리’가 되겠고, 동사로 보면 ‘소리를 없애다’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글자의 순서를 무시하고 뒤에서부터 풀면 ‘소리가 없다’가 되겠지요.

문제는 이 ‘無聲(무성)’을 앞의 ‘落葉(낙엽)’과 엮어서 번역할 때입니다. 그럼 ‘낙엽’은 어쨌거나 그 자체로 명사니까 순서상 뒤의 ‘무성’이 동사, 곧 술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낙엽이 소리가 없다’나 ‘낙엽의 소리가 없다’ 정도가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낙엽’을 풀어서 번역한다고 해도 ‘떨어진 잎이 소리가 없다’나 ‘떨어지는 잎이 소리가 없다’ 정도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낙엽’에다가 ‘없는 소리’나 ‘소리를 없애다’를 붙이면 ‘낙엽이 없는 소리’나 ‘낙엽의 없는 소리’, 또는 ‘낙엽이 소리를 없애다’나 ‘낙엽의 소리를 없애다’라는 이상한 문장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조금 덜하기는 해도 ‘낙엽이 소리가 없다’나 ‘낙엽의 소리가 없다’도 어딘가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한문 문장이나 시구에서는 주어와 술어(동사)의 순서를 뒤집어서 표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소리 없이 떨어진 잎’이나 ‘소리 없이 떨어지는 잎’과 같이 곧잘 뒤에서부터 번역하곤 합니다. 저도 이것이 가장 무리 없는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정황을 처음부터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잎은 소리 없이 떨어지고’ 정도가 가장 자연스럽겠지만, 이는 한문 문장에서 글자가 놓인 순서와 낱말의 기본 구조를 완전히 무시하는 격이 되기에 마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滿地(만지)’인데, 이 시어도 국어사전에 ‘땅에 가득하다’라는 뜻으로 올라 있는 낱말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그대로 ‘땅에 가득하다’라고 풀면 되겠습니다.

물론 이 시어도 ‘滿(만)’ 자를 ‘채우다’나 ‘가득히 채우다’라는 뜻의 동사로 보아 ‘땅을 가득히 채우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자기 생각이나 취향대로 선택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맨 마지막 글자인 ‘붉을 홍(紅)’ 자까지 합하여 이 둘째 구 전체를 저는 우선 이렇게 번역하겠습니다.

소리 없이 떨어진 잎들은 땅에 가득히 붉다.

낙엽, 곧 잎이 떨어지는 것은 이 시의 계절이 가을(秋)이니, 당연한 표현이겠는데, 그렇다면 ‘붉다(紅)’는요? 어째서 붉은 것일까요? 예, 단풍이 든 것입니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자 붉게 물든 단풍잎들이 떨어져서 산속의 온 땅을 붉은 빛깔로 뒤덮은 것입니다. 예쁘게 물든 단풍잎들이 지천으로 떨어져 쌓여 있는, 또는 깔려 있는 가을 산의 풍경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는 분들은 그 거의 슬프리만치 눈부시게 아름다운 광경을 쉽게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

예, 벗을 찾아 길을 나선 이 시의 화자는 바야흐로 낙엽이 져 텅 빈 듯한 가을 산의 아득한 그늘 속에서 소리 없이 떨어진 붉은 단풍잎들이 비단처럼 깔린 아름다운 광경을 지금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역시 시인답게 이 화자는 목적 지향형의 인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방문(訪問)이라는 애초의 목적에 충실한 실용주의자라면 그는 산속에서는 해가 일찍 진다는 점을 감안하여 한시라도 빨리 벗의 거처를 찾아가기에 혈안이 되어 가을 단풍잎으로 붉게 물든 풍경 따위 가볍게 무시하고 발길을 서두르지 않을까요.

예, 우리는 지금 시인의 마음을 좇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셋째 구로 넘어가야겠네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로 본다면, 시상의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지는 ‘轉(전)’에 해당하는 구입니다.

어떤 시상이 펼쳐질지 더욱 궁금해지네요.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H04. 가을, 벗을 찾아가는 이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