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07. 가을, 벗을 찾아가는 이의 마음

- 정도전, 〈방김거사야거〉_5

by 김정수

H07. 가을, 벗을 찾아가는 이의 마음 / 鄭道傳(정도전), 〈訪金居士野居(방김거사야거)〉_5

마지막 넷째 구는 ‘不知身在畵圖中(부지신재화도중)’입니다.

‘아닐 불, 알 지, 몸 신, 있을 재, 그림 화, 그림 도, 가운데 중.’

역시 그리 어려운 글자는 없습니다.

‘부지/신재/화도/중’ 정도로 끊어 읽으면 되겠고요.

이 넷째 구가 시상의 정점입니다. 이 시가 우리 한시사(漢詩史)의 명편의 하나로 살아남은 이유에 해당하는 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번역은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畫圖(화도)’는 두 글자가 모두 ‘그림’이라는 뜻이니까 그냥 ‘그림’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제가 한문이나 한시 관련의 다른 글들에서 이미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데, 한문에서는 이처럼 같은 뜻의 다른 글자 두 개로 한 단어를 만들어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요.

이 경우 글자 수의 제한이나 운율의 제약이 없는 산문(散文)이라면 그냥 ‘畵中(화중)’이나 ‘圖中(도중)’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이 시의 경우 ‘칠언절구(七言絶句)’라는 형식이므로, 그 필수 요소인 기본 글자 수(일곱 글자)를 맞추기 위해서 굳이 같은 글자 두 개를 나란히 썼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넷째 구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글자는 바로 ‘身(신)’ 자입니다. ‘몸’ 또는 ‘신체’라는 뜻이 기본이지만, 한문 문장이나 시구에서는 이 글자가 ‘자신(自身)’이라는 뜻으로 곧잘 쓰인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편리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나 ‘자기 자신’으로 번역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요. 저도 일단은 ‘나 자신’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中(중)’ 자입니다. 그냥 ‘가운데’라고만 보면 이것은 이쪽과 저쪽 사이의 중앙(中央)을 가리키는 글자로, 일종의 거리나 위치 개념이지요.

하지만 이 시에서는 ‘속’이나 ‘안’의 뜻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이라고 하겠습니다.

畫圖中(화도중), ‘그림 속’이지요. 이걸 ‘그림 가운데’라고 하면 뜻은 통해도 어감 상 아주 딱 알맞다는 느낌은 아무래도 아니지요? 무엇보다도 글자 수가 많아서 깔끔하지 않고 다소 번잡하다는 느낌도 들고요.

일단 번역을 해보면 다음과 같은 정도가 되겠습니다.

나 자신이 그림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다.

이 시의 화자는 지금 어느 산속에 머물고 있는 벗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 정경을 화자는 첫 구와 둘째 구에서 이렇게 읊었지요.

가을의 그늘은 아득하고 온 산은 비어 있다.

소리 없이 떨어진 잎들은 땅에 가득히 붉다.

이 정도만 해도 화자가 이 산속에서 가을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고 표현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이 마지막 구의 고백이 누군가에게 길을 묻고 나서 나왔다는 데 있습니다. 셋째 구를 다시 볼까요.

말을 시내의 다리께에 세우고 가는 길을 묻다.

여기서는 ‘세우고(立)’가 핵심입니다.

말을 멈춰 세웠다는 것은 화자가 지금껏, 그러니까 다리께에서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에게 길을 묻기 전까지 계속 말을 몰고 이동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첫째 구와 둘째 구는 말을 타고 이동하면서 눈으로 본 가을 정취에 대한 표현인 것이지요.

지금으로 치면 화자가 자동차, 기차, 버스, 또는 자전거 따위의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움직이면서 주변 경치를 바라본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동하면서 보는 경치와 가만히 멈추어 서서 바라보는 경치에서 받는 감흥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 동의하시겠지요?

이동하면서 보는 경치에서보다 멈추어 서서 가만히 바라보는 경치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 이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화자가 ‘알 지(知)’ 자를 쓴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그전까지는 몰랐다는 뜻입니다. 무엇을요? 자기 자신이 ‘그림(畫圖) 속(中)’에 있다는 사실을요.

그러니까 앞의 첫째 구와 둘째 구에서 표현한 정취는 그저 가을 산의 겉모습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가을 산의 모습이 ‘그림(畫圖)’처럼 아름답다는 사실을 화자는 바야흐로 손에 쥐고 있던 고삐를 잡아채어 말을 멈춰 세우고 나서야, 그래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면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는 것이지요.

예, 화자는 지금껏 그림 같이 아름다운 가을 산의 풍경 속을 지나온 것입니다.

어쩌면 화자는 예의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확실히 알고 나자 비로소 해가 지기 전에 벗의 집에 당도해야 한다는 초조함에서 벗어나 안심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바야흐로 그 순간 가을 경치의 아름다움, 그 진면목을 비로소 알아보게 된 것이고요.

‘묘사(1,2구)’와 ‘전환(3구)’과 ‘자각(4구)’까지, 그야말로 절묘한 시상의 전개입니다.

화자를 따라서 이 시를 읽는 우리도 이 마지막 넷째 구에서 지금껏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가을 경치 속에 있었는가를, 그리고 지금 바야흐로 얼마나 아름다운 경치 속에 있는가를 비로소 깨닫고 소스라칩니다. 이런 걸 ‘신선한 충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 지금 우리 곁을 가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가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미 살짝 지나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예, 금세 겨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가을이 두 번 다시 못 올 얼마나 아름다운 계절인지를 ‘알아야(知)’ 하지 않을까요.

바삐 살아가던 걸음을 아주 잠깐만 ‘멈추고(立)’ 이 가을을 가만히 바라보기를 이 시는 6백 년의 세월 저편에서 우리에게 속삭이듯 권해오고 있네요.

다음 마지막 글에서 시제(時制)를 맞추고, 시어들과 토씨를 다듬어서 전체 번역문을 마무리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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