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05
CA1021.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구애한 끝에 마침내 결혼 승낙을 얻어낸다는, 아주 오래되고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 하지만 이 평범함이 기아로스타미 영화 속으로 들어오면 기적처럼 아름다워진다. 이것이 키아로스타미 영화 미학의 비밀이다. 아무리 평범해도 사랑의 주체가 되면 누구나 그것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삶의 기본 원리를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 정말 놀랍다.
CA1022. 잉그마르 베르히만, 〈산딸기〉(1957)
지나온 삶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뿌듯하지도, 후회스럽지도 않은 그 무엇이다. 다만 그것은 그 삶의 주체가 겪어온 어떤 것,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 그 자체일 뿐이다. 하지만 감독은 놀랍게도 그렇게 시간의 저편으로 밀려가 버린 삶을 추호도 변명하거나 합리화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삶이란 그런 것’이라는, 이보다 더 평범할 수도, 동시에 이보다 더 심오할 수도 없는 마땅한 명제다.
CA1023. 잉그마르 베르히만, 〈제7의 봉인〉(1957)
죽음이 남의 문제인 시대에 인간은 신에게서 멀어지고, 죽음이 나의 문제일 수도 있는 시대에 인간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발버둥친다. 하지만 신은 그 어느 시대에도 인간을 향하여 공평하게 냉담하거나, 냉담하게 공평할 뿐이다.
CA1024. 변영주, 〈낮은 목소리 2〉(1997)
건강한 삶에 대한 찬가. 강덕경 할머니의 죽음 이후,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이 메시지의 ‘건강함’ 또는 ‘강건함’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래도 〈낮은 목소리〉(1995)와 〈낮은 목소리 2〉가 명백한 연작 관계인지 아닌지가 확실히 분간되지 않는 것은 감독이 망설인 탓일까, 아니면 빅 픽처일까.
CA1025. 장선우, 〈나쁜 영화〉(1997)
내용이나 형식이 아니라, 그 둘의 총합이자 총체인 영화가 그 자체로 비판의 덩어리일 수 있다는 전언. 상업적인 틀에 관한 문죄(問罪)의 권리는 관객 누구한테나 있을 테지만, 그 판결은 어쩌면 취향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