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242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42

by 김정수

CA1206.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마지막 웃음〉(1924)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부득이하게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사람의 애환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에밀 야닝스의 ‘풍채’는 그 애환을 한층 더 비극적인 것으로 만든다.


CA1207. 존 카펜터,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1987)

감독은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를 조절함으로써 공포 심리를 조장한다. 카메라가 피사체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 관객은 그 배우의 표정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시야에서 사라진 주변 공간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다. 이것이야말로 영화의, 또는 카메라의 마술이다.


CA1208. 우디 앨런,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

아마도 프랑수아 트뤼포가 미국에 태어났다면 우디 앨런처럼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대사가 많아도, 아니, 대사가 많을수록 앨런의 영화가 더욱 영화다워진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가사의다.


CA1209. 구스 반 산트, 〈투 다이 포〉(1995)

미국은 미디어 왕국이다. 하지만 계급 사회의 자기 파멸의 시나리오를 간직하고 있는 왕국이다. 그에 대한 비판을 감독은 니콜 키드먼의 옷 벗기 수위를 조절함으로써 수행해 낸다. 벗지 않아도 파멸시키고, 완전히 다 벗어도 파멸시키는 미디어의 생리에 대한 엄중한 응시―.


CA1210. 우인태, 〈야반가성〉(1995)

홍콩영화는 배우가 만드는지 감독이 만드는지 보는 이를 헷갈리게 할 때가 더러 있다. 이 영화에서 장국영의 아우라는 배우의 범주를 벗어날 만큼 강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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