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65
CA1321. 프랭크 E. 애브니 3세, 〈할아버지의 캔버스〉(2020)
단편 애니메이션. 3세가 하는 1세의 이야기. 아내를 먼저 보낸 어르신 화가의 회생기. 또는, 어린 손녀의 홀로 된 화가 할아버지 응원기. 그가 캔버스를 일으켜 세우고, 마침내 붓을 잡는다. 여기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CA1322. 채드 스타헬스키, 〈존 윅 4〉(2023)
어떤 이유에서든, 아마도 존 윅의 최후를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명확하게 묘사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설사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옆에 쓴 존 윅의 묫자리를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하지만 그것은 목숨을 걸고 쉴 새 없이 분투해 온 한 사내의 인생을 위해서는 비로소 더없이 마음 놓이는 자유와 안식의 표상이기는 하다. 그런 존 윅의 인생 앞에서 ‘킬링’의 윤리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한갓, 영화인 것을.
CA1323. 구로사와 아키라, 〈카게무샤〉(1980)
카게무샤를 내세운 다케다 신켄 측이 패배한 원인이 그들에게는 없는, 또는 거부한 조총이 상대에게는 있었던 사실 때문이 아니다. 그가 카게무샤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정황 자체가 그의 패배를 강력히 요구한 결과다. 그러니까 그것은 기술적인 패배가 아니라 서사적인 패배다. 하긴, 그건 이미 히스토리가 아닌가.
CA1324. 구로사와 아키라, 〈란〉(1985)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 지점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것인지, 구로사와 아키라가 위대한 것인지 헷갈린다. 그런 지점이 들어 있는 영화는 만들었다는 점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분명 거장이다.
CA1325. 구로사와 아키라, 〈데르수 우잘라〉(1975)
가장 순정한, ‘인간’을 잃지 않은, 잃을 염려가 없는, 잃을 뜻이 없는, 잃지 않겠다는 의지에 스스로 불타는 인간의 모습을 목격하는 감동. 대자연 속의 바로 그 인(人), 간(間). 이런 영화, 이런 캐릭터가 또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