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이소지 이소부지 인기사저 / 《논어》 〈자로편〉 제2장
經(경)10. 어떤 사람을 들어 써야 하는가?_2 / 擧爾所知(거이소지) 爾所不知(이소부지) 人其舍諸(인기사저) - 《論語(논어)》 〈子路篇(자로편)〉 제2장
공자님의 이 말씀은 제자인 중궁(仲弓)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중궁은 이름이 아니라 염옹(冉雍)이라는 사람의 자(字)입니다.
예수님께 열두 제자가 있었듯이, 공자님께는 주요한 열 제자가 있었지요. 그들을 가리켜 보통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고 하는데, 중궁은 바로 그 열 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특히 덕행(德行)에 뛰어났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자님의 이 말씀은 중궁의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것입니다.
“焉知賢才而擧之(언지현재이거지)?”
‘언지/현재이/거지’ 정도로 끊어 읽으면 되겠고, 저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어찌 어진 이와 재능 있는 이를 알아보고서 그를 들어 쓰겠습니까?”
맨 앞의 ‘어찌 언(焉)’자는 ‘어떻게’라고 번역해도 괜찮겠습니다.
문제는 ‘어질 현(賢)’자와 ‘재주 재(才)’자로 이루어진 ‘賢才(현재)’인데, 이 말은 여러 가지 모양새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두 글자 각각을 다 새겨서 ‘어진 이와 재능(재주) 있는 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어진 재주꾼’이나 ‘현명한 능력자’ 정도로 할 수도 있겠고, 숫제 그냥 ‘현재’라고 해도 크게 문의(文意)를 해치는 느낌은 아니므로, 번역하는 분이 자기 마음에 드는 대로 하면 되겠습니다.
저는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다 새긴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어진 이와 재능 있는 이’라고 번역한 것일 뿐입니다.
이 질문을 했을 때 중궁은 마침 당시의 권세가인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 되어 스스로 인재를 등용해야 할 책임을 맡은 처지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인사(人事) 업무 담당자라고 하면 될까요.
그러니까 지금 중궁은 세상에는 등용할 만한 능력이 있는, 또는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텐데, 그들을 어떻게 낱낱이 다 알아보고, 그들 가운데서 적절한 인재를 찾아내어 등용할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궁은 바야흐로 인재 등용의 어려움에 대하여 스승 공자님께 조언을 구하고 있는 참입니다.
이에 대한 공자님의 답변은 언제나 그렇듯이 적확하고 명쾌합니다.
네가 아는 이를 등용하면, 곧 네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인재를 찾아내어 등용하면, 그걸 보고 사람들이 네가 인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자기들 주변에서 역시 어질고 재능 있는, 곧 능력 있는 인재를 찾아내어 너한테 천거하리라는 것입니다.
중궁 스스로 먼저 인재 등용의 모범을 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겠습니까. 누가 되었든,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요즘처럼 여러 가지 매체와 경로로 인재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어떤 자리와 역할에 적합한 인재를 찾아내어 쓰기가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한데, 그런 시스템이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로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았던 그 옛날, 곧 이천오백 년 전의 춘추시대에 어떤 인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한 사람이 무슨 수로 다 알 수 있겠습니까.
결국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인재를 찾아내어 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범위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공자님은 바로 이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궁이 아무리 사람 보는 눈이 탁월하고, 인간관계가 폭넓어도 그것은 한정된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울 테니까요.
공자님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입니다.
어떤 조직에서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보일 수 있는 모범은 말보다는 역시 행동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할 수밖에 없듯이,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걸 따라 하게 마련입니다.
이때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좋은 행동만 본받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행동도 따라 하게 마련이지요. 따라서 윗사람의 행동이 어떠하냐에 그 조직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 것 아니겠습니까.
중궁이 윗사람으로서 자기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 곧 진짜 인재를 들어 쓴다면, 그걸 보고 사람들도 그들 주변에서 정말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반드시 찾아내어 중궁에게 천거하지 않겠습니까. 설사 그 천거의 행위가 중궁에게 잘 보이려는 어떤 타산이나 계산속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어쨌거나 일이 그런 식으로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인재를 등용하는 어려움은 해소되리라는 것이 바로 공자님 조언의 핵심입니다.
달리 말하면, 윗사람이 자기 주변에서, 곧 자기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 인재가 아니라, 자기한테 아부나 할 줄 아는 능력 없는 이를 등용한다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역시 그들 주변에서 인재가 아니라 윗사람의 비위 맞추는 재주만 탁월한, 그러나 업무 능력은 결핍된, 한마디로 무능한 아첨꾼만을 찾아내어 천거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식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장차 그 조직, 그 나라는 어찌 되겠습니까. 몰락이 불을 보듯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윗사람이 어떤 사람을 등용하는가를 보면 그 조직, 그 나라의 앞날을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그 자리에 적합한 능력을 갖춘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당장의 업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조직, 그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임을 우리는 공자님의 이 답변의 말씀을 통하여 넉넉히 헤아려 볼 수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