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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Jul 05. 2024

C13. 감시사회, 종교영화, 로드무비

  - 임권택, 〈만다라〉

C13. 감시사회, 종교영화, 로드무비 - 임권택, 〈만다라〉(1981)

줄거리 / 풀리지 않는 번뇌와 고뇌의 여정

   법운(안성기)은 삶과 죽음, 인생과 세계에 대한 풀리지 않는 번뇌를 견디다 못해 학교를 그만두고, 여자친구와도 헤어진 뒤 출가하여 6년째 만행(漫行)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지산(전무송)은 승려의 몸으로 여자 문제에 얽혀 파계(破戒)한 탓에 승적을 박탈당하고 잡승(雜僧)이 되어 역시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둘은 우연히 동승한 시외버스 안에서 위병(衛兵)의 검문을 받다가 서로를 알게 되고, 나중에 어느 사찰에서 다시 만나 의기투합, 함께 길을 떠납니다.

   6년째 수행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 법운은 자유분방하고 호탕하고 자기만의 명쾌한 논리를 갖추고 있는 지산에게 알게 모르게 끌립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술과 고기, 여자를 마다하지 않는 지산에게 반감도 느끼지요.

   그러면서도 둘은 함께 지내며 서로의 과거를 털어놓고, 삶과 세상에 대하여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전국 곳곳의 산과 들, 그리고 사찰을 누비고 다닙니다.

   한데도 둘은 모두 여전히 자기들 번뇌의 답, 또는 해결책을 찾지 못하여 괴로워합니다.

   당시의 사회는 그런 답을 줄 만한 곳이 못 되었고, 그들 또한 답을 찾을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 그들은 여전히 번뇌에 사로잡힌 채 안타까이 몸부림칠 뿐이지요.

   마침내 어느 겨울날 지산은 어떤 개인이 지은 자그마한 암자에서 부처상에 점안(點眼)을 해주고 돌아온 뒤 추운 밤 차가운 눈 속에 엎드려 얼어 죽는 길을 택하고 맙니다.

   법운은 그런 지산을 위해 홀로 쓸쓸한 장례를 치러주고, 마지막으로 세속의 어머니를 한 번 만나본 뒤, 다시 혼자만의 정처 없고 기약 없는 만행의 길을 떠납니다.     


세 가지 테마 / 1. 인권 부재의 감시사회

   승려인 법운과 지산이 함께 타고 가던 버스 안에서 공권력의 느닷없는 침입으로 불심검문을 당하는 장면이 영화의 맨 앞에 배치되어 있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것은 〈만다라〉가 불교 영화의 외피를 하고는 있지만, 실은 온 국민이 공권력의 손으로 영장도 없이 언제든지 수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연행되어 조사받고 처벌받을 수 있었던 그 당시 사회에 대한 어떤 발언을 하는 영화임을 대놓고 선언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당시는 공권력이 사람을 늘 감시의 눈초리로 바라봄으로써 자유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도록 억압하던, 인권이 전혀 존중받지 못하던 시대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장면은 〈만다라〉가 불교 영화이자, 바로 그런 감시와 억압의 사회에 대한 어떤 발언을 하는 영화라는 선언인 셈입니다.

   동시에, 〈만다라〉를 불교 영화로만 읽지 말고, 시대에 대하여 어떤 발언 또는 논평을 하는 영화로 읽어달라는 일종의 지침이 되는 중요한 장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 가지 테마 / 2. 종교(불교) 영화

   비록 떠돌이 승려지만, 두 주인공은 어쨌거나 스님이니까 이 영화가 불교적인 담론과 분위기로 가득 차 있는 것은 하등 이상하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 사회가 어떤 성격의 것인가를 일단 도입부에서 보여주고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영화가 비록 불교의 외피를 두르고는 있어도 실은 이런 성격(시민을 감시하는)의 사회에 대한 어떤 논평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영화를 계속 보게 됩니다.

   물론, 겉으로는 법운과 지산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떤 번뇌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인 듯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어떤 발언이나 논평이라는 시각으로 그들의 번뇌를 다시 읽는다면, 영화가 왜 이렇게 무겁고 진지한 정서로 가득 차 있는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중간중간 보여주는 속세의 모습은, 숲속 사찰과의 대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아름답고 밝고 세련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음습하고 음침하고, 심지어 불결하기까지 합니다. 한마디로, 굉장히 부정적이고 암울하지요.

   반면에, 산속이나 들판이나 산사를 비롯한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자연풍경은 영화 속에서 사무칠 정도로 매우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결국, 〈만다라〉는 표현의 자유마저 없었던 그 당시의 억압된 사회에 대하여 지극히 비판적인 이야기를 불교라는 필터를 통하여 우회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감행하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새로이 연장된 군부독재정권의 그 암울한 시기, 어디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 당시 우리나라가 누구도 쉽사리 안착할 수 없을 만큼, 전혀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아니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삶과 세상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여 궁지에 몰려 있는 딱한 인물들뿐입니다.

   그러니까 영화는 ‘지금 이 사회는 그들의 번뇌에 대하여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하는 사회다’라는 선언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영화 속 주지 스님의 ‘병 속의 새를 어떻게 꺼낼 수 있는가?’라고 하는, 처음부터 답이 없는 화두(話頭) 또는 공안(公案)도 그 당시 사회가 아무런 희망도 답도 없는, 그야말로 암담한 사회라는 통렬한 지적으로 읽힙니다.     


세 가지 테마 / 3. 로드무비

   〈만다라〉(1981), 〈개벽〉(1991), 〈서편제〉(1993), 〈취화선〉(2002), 이 네 편의 영화는 임권택 감독 특유의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우리나라의 수려한 자연풍광이 정일성 촬영감독의 솜씨로 가슴이 아플 만큼 아름답게 화면을 수놓고 있는 영화들입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인 셸리는 ‘가장 슬픈 것이 가장 아름답다’라고 말했는데, 〈만다라〉의 아름다움도 거의 슬플 정도의 아름다움입니다.

   이 네 편의 공통점은, 보고 있노라면 아름답다 못해 가슴을 아프게 저미고 드는 우리나라의 자연 풍경 속을 주인공이 허위단심 걸어가는 장면이 거듭거듭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이런저런 일들을 겪음으로써 자기 자신과 세계를 나름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인식하며, 나아가 그에 반응하고 대응합니다.

   또, 이 영화들에는 주인공이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장면들이 어김없이 나온다는 점도 저한테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 또한 임권택 감독의 로드무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이 영화들에서는 모두 주인공이, 또는 복수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죽는 것으로 끝난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났을 때 우리는 삶과 죽음, 그리고 각자의 인생 자체에 대해서 나름의 어떤 느낌과 통찰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임권택 감독의 로드무비는 ‘자기 성찰, 자아 성찰의 느낌을 지닌 도보 여행’이라고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다라〉는 바로 그 임권택 표 로드무비의 당당한 첫머리에 놓이는 명작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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