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강쇠가》 다시 읽기
文(문)3. 버림받은 여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 《변강쇠가》 다시 읽기
버림받은 이주민 여성들이 갈 곳
영화 〈완득이〉(2011, 이한)에도 상세히 그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주민 여성의 불행이 가혹한 것은 언어 소통의 부재와 서로의 문화적 차이 따위와 같은 이유로 그들이 남편한테 학대받거나 버림받을 확률이 매우 높으며, 그런 위험에 그들이 거의 무방비로 상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입니다.
이주민 여성이 한국인 남편과의 불화로, 그것이 자초한 것이든, 아니면 남편 쪽에서의 일방적인 만행 탓이든, 하루아침에 자기 삶이 위태로워지는 국면으로 내몰리는 것은, 우선은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 그들에게는 사고무친(四顧無親)의 타국인 탓 아니겠습니까.
사정이 이러한 마당에, 과연 버림받은 그들에게 갈 곳이 있을까요.
버림받은 조선 여인들이 갈 곳
이는 조선시대에 이 땅의 여인들이 칠거지악(七去之惡) 따위의 사유로 소박(疏薄)을 맞아 시가(媤家)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었던 사태와 매우 닮아 있는 상황입니다.
어쨌거나 그들은 출가외인(出嫁外人)이었기 때문입니다. ‘외인(外人)’은 결국 밖으로 내쳐져서 ‘속한 곳이 없게 된 사람’ 또는 ‘받아줄 곳이 없어진 사람’이라는 뜻 아닙니까. 그런 그들이 도대체 어디를 갈 수 있었을까요.
이 대목에서 저는 조선 중기의 여인으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갈 곳이 없어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비극적인 여생을 살다 갔던 이옥봉(李玉峰)이라는 시인을 속절없이 떠올립니다.
아니, ‘살다 갔던’이라고 해서는 안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이 어떻게 ‘살다 갔던’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저 ‘죽어갔던’이라고 해야 겨우 그 실체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는 표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명(明)나라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그의 뛰어난 시재(詩才)도 가부장제(家父長制)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엄혹한 윤리적 굴레로부터 그를 구해주지는 못했습니다.
버림받은 옹녀가 갈 곳
판소리계 문학작품인 《변강쇠가》에서 명실상부한 ‘여주’인 옹녀도 버림받은 다음 갈 곳이 없는 처지였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극 중에서 옹녀는 모두 세 차례 버림을 받습니다.
첫째는, 타고난 청상살(靑孀煞:젊어서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될 사나운 기운) 때문에 평안도에서 여러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다음 쫓겨나는 방식으로 버림받은 것입니다.
둘째는, 남편인 변강쇠가 그 자신의 타고난 게으름 탓에 꼼수를 부리다 장승에게 무서운 저주를 받아 병이 들어 목숨을 잃는, 이른바 ‘장승 죽음’을 자초함으로써 졸지에 과부가 되는 형식으로 버림받은 것입니다.
이 ‘장승 죽음’은 ‘장승 동티’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동티’는 한자로 ‘動土(동토)’라 쓰고, ‘동티’로 읽습니다. 이는 금기(禁忌)인 것을 건드려 그걸 주관하는 지신(地神:땅을 다스리는 신령)의 노여움을 삼으로써 입게 되는 저주나 재앙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지금도 ‘동티 난다’라는 식의 표현이 더러 쓰이기도 하지요?
마지막 셋째는, 《변강쇠가》의 후반부, 변강쇠의 죽음 또는 그의 주검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존재 자체가 은연중에 사라짐으로써 ‘서사적으로’(!) 버림받은 것입니다.
《춘향전》의 춘향이, 당시 조선의 신분제도 하에서는 매우 비현실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의 손으로 구원을 받는다거나, 《심청전》의 심청이, 터무니없는 초자연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바다에 몸을 던졌는데도 결국은 용왕에게 구원받는다거나, 하는 경우들하고 대어 보면 더더욱 옹녀의 불행이 돋보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춘향이나 심청은 그렇듯 ‘서사적으로나마’ 구원을 받지만, 《변강쇠가》에서 옹녀한테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옹녀는 완전히 무시당합니다.
달리 말하면, 작자는 서사적으로 옹녀를 구하려는, 또는 옹녀에게 그다음에 이어질 삶의 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그 어떤 노력도, 배려도,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직무유기라는 말을 쓰고 싶은 정도지요.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당찬 여인 옹녀
그래도 옹녀는, 한 지아비의 지어미로서 끝까지 정절을 지키려 했던 춘향이나, 시각 장애인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효녀로서의 본분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심청과 견주어볼 때, 기본적으로 매우 분방하고 당찬 여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관계를 맺는 족족 남자들이 죽어 나갔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추방당했을 때 옹녀는 스스로 운명을 비관하여 우물 속에 몸을 던지지도 않았고, 들보에 목을 매달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하거나, 충격을 못 이겨 몸져눕지도 않았습니다.
또, 우울증에 걸리거나 숫제 넋을 놓고 실성하지도 않았지요. 외려 그는 당당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남쪽으로 길을 떠납니다.
이쯤에서 언뜻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스칼렛 오하라(비비언 리)를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어떤 좌절 속에서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Tomorrow is another day)!”라고 하며, 거듭거듭 마음을 다잡고 힘차게 일어서는 그 기개와 용기, 그리고 의지―.
그 덕분에 옹녀는 중간 지점인 청석골 좁은 길에서 마침 북쪽으로 올라오던 변강쇠를 만나 의기투합, 함께 지리산으로 들어가 새로운 가정을 꾸립니다.
이야기 속에서 사라진 옹녀
《변강쇠가》의 내용이 그렇게 운명처럼 만난 옹녀와 변강쇠가 천생연분으로 백년해로 하는 이야기라면, 재미는 없을지언정,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그러나 이야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변강쇠가》는 이 대목에서, 이야기 구조의 심각한 불균형을 감수하면서까지, 변강쇠가 어처구니없게도 장승 죽음을 자초한 뒤 그 장례를 치르는 과정 자체에 후반부 거의 전부를 할애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으리만큼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을 감행합니다.
이것이 무모한 까닭은 그 과정에서 옹녀의 행방이 묘연해지기 때문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아무도 옹녀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마치 처음부터 옹녀라는 인물이 없었던 것처럼 옹녀에게 더는 지면이 할애되지 않습니다.
문학작품의, 또는 서사의, 또는 이야기의 등장인물로서 이보다 더 비참한 신세가 또 있을까요.
그 여인에 대한 근심 걱정
그래서 《변강쇠가》를 다 읽고 난 뒤 제 마음속에 오롯이 남은 것은 옹녀의 행방과 그의 앞날에 대한 근심 걱정뿐입니다.
옹녀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이 정도로 철저하게 버림받은 여인에게도 따로 또 갈 데가 있을까요?
이주민 여성들에게는 그래도 최소한의 법과 제도, 그리고 인정(人情)과 사회적인 도움의 손길이라도 있지만, 옹녀는 이중 삼중의 외면 속에 속수무책으로 행방불명이 되고 맙니다.
그나마 옹녀가 죽었다는 진술은 《변강쇠가》 속 어디에도 없으니, ‘옹녀는 죽지 않고 다만 사라졌을 뿐’이라는 식의 수사적인 표현으로 면피하듯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고 말아야 할까요?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버림받은 여인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인간적인’ 서사를 저는 달리 알지 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