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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yaya May 18. 2016

을의 반격, 그리고 을의 '패배'

러다이트 운동과 대진유니텍 사건, 그 이후의 이야기

한 달 전에 ‘을의 반격’이라고 네티즌이 이름 붙인 흥미로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현대차의 2차 협력사 대표가 1차 협력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자 금형 틀을 들고 잠적해 현대자동차 공장의 생산라인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난 것. 네티즌은 을의 반격이라고 지칭했지만, 사실 대진유니텍은 ‘대진유니텍 - 한온시스템 - 현대모비스 - 현대차’로 이어지는 ‘정’ 수준의 회사였다.


누군가는 이 사건을 통쾌해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천문학적 보상금을 물어줘야 할 대진유니텍의 대표를 걱정했으리라. 혹시나 현대차를 걱정했다면 당신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과 정확히 부합하는 사람일 것이다.


우린 바야흐로 자본주의가 농익은 노동자의 수난시대에 살고 있다. 상사의 욕설을 들으며 생활비를 짊어지고 갈릴리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심정으로 직장을 버티고, 집에 돌아오면 원자 수준으로 낱낱이 해체된 자아를 맥주 한 캔으로 재조립하며 잠든다. 수십 년의 모노드라마는 어휘의 다양성을 갖지 못한 채 모노로 귀결된다. 매달 청구되는 카드값을 낼 수 있도록 월급만 준다면, 대학에서 배웠던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긴, 이제는 대학에서 그런 걸 가르치지도 않는다. 몇몇 대학은 그런 사상 따위야 아예 모르는 게 인간성을 보존하기에는 더 수월하다고 결론 내렸으니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철저하게 균질화된다.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 대진유니텍의 대표는 어떻게 됐을까? 내 한 몸 건사하기 어려운 시대에 생면부지인 사람의 안위(심지어 기업의 대표)를 생각하는 것은 웃기지만, 나는 묘하게도 그가 걱정된다.


아마도 영국의 기계파괴 운동을 이끌었던 Ned Ludd라는 노동자와 유니텍 대표의 행동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리라. 비록 회사의 대표와 노동자라는 큰 간극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사실 자체가 더 큰 불행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Ned Ludd가 실존했던 인물이었는지 혹은 가상의 인물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는 산업혁명 시기, 불행한 노동자의 처우에 대항하여 방적기의 프레임을 훔치거나 파괴하는 급진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를 위시한 소위 러다이트(Luddites)라 불리는 사람들이 기계파괴 운동을 벌여, 잠시간 영국을 휩쓸었던바 있다.


러다이트 운동은 당시 전개된 산업혁명 양상의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1721년 영국의 더비에서 비단 직공인 Thomas Lombe가 최초의 공장다운 공장을 설계한 이래로 방적업은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새로운 기계는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었기에 여성과 아동노동이 곧장 도입되었다. 숙련공을 모두 해고하고, 비숙련공으로 노동을 대체한 것도 이 시기다. 산업혁명은 농민들을 한낱 도구로 만들었으며 공장의 소유주들은 ‘자본가 계급’ 수준을 넘어 ‘기업가 계급’이 되었다. 이들은 19세기 유럽 대부분의 국가 정책을 주물럭거렸다. 이는 과거의 이야기임에도 지극히 현대적으로 들리는 구석이 있다.

19세기 초에 일어난 Luddites의 기계파괴운동

노동자 임금의 철칙은 잔혹하게도 “노동자가 더도 덜도 말고 생존을 유지하고 노동력을 계속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1805년에서 1833년 사이에 직조공의 평균 임금은 주급 23실링에서 6실링 3페니로 수직 낙하했다.


노동자는 늘 가난했고 상황은 처참했다. 불행은 결국 폭동과 러다이트를 태동시켰다. 1816년 펜스의 폭동에 참여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제게는 땅과 하늘밖에 없습니다. 하늘이여 도와주소서. 이대로 집에 돌아가면 어차피 죽을 겁니다. 빵을 주세요.”  하지만 이 운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는 군대를 투입했고, 기계파괴운동을 벌인 대가로 러다이트들은 교수형을 당하거나 식민지로 보내져 강제노역을 해야만 했다.




한온시스템의 대진유니텍 인수에 경제계는 합격점을 주었다

유니텍 대표가 생명의 안위를 위협받지는 않을 것이다. 사건의 해결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으로, 그리고 초고속으로 이루어졌다. 한온시스템이 대진유니텍을 인수하여 수직계열화한 것이다. 체계의 문제를 바로 그 체계 내부에서 해결하는 훌륭한 논리적 정합성, 현대 조직이론의 정석이라 할 만하다. 국내 MBA의 케이스 스터디로 활용해도 충분하리라. 경제계는 이런 문제 해결 방식에 주가의 급등으로 응답함으로써 한온시스템에 합격점을 주었다. 여기에 인본주의와 도덕성 논리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최소한 19세기에는 오언과 엥겔스가 출현해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과연 21세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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