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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yaya Jul 07. 2016

음식을 '선물'한다는 것

'맛있다'는 한 마디.

손님, 혹시 음식이 잘 맞지 않으셨나요?


어느 날, 한 식당의 매니저는 조용하고 정중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그것은 단순히 고객의 니즈를 요리에 반영하고 품질을 개선하는 비즈니스적 마인드를 뛰어넘는다. 질문에는 근본적인 배려가 있었다. 이것은 내밀한 예절이다. 사실 음식은 꽤 괜찮았지만 불행히도 그 날은 유독 식사가 내키지 않았다.


'요리는 정말 훌륭한데, 맛있는 요리를 다 못 먹어서 아쉽네요.'
난 평소답지 않게 너스레를 떨었다.


정당하고 적합한 가격을 지불하고 먹는 음식이다. 남기는 것은 소비자의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정말 못 먹을 수준이 아니라면 접시를 비우려고 노력한다. 요리라는 행위,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음식을 내보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요리, 최후의 수단

요리. 재조립의 프로세스 © Nyaya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일에 파묻힌 생활을 하다 보면, '요리'와 '미식'이라는 단어는 생각 저편으로 달아나 있음을 발견한다. 삶은 어느 정도 산산조각나 있어, 그 파편을 당최 어디에서부터 맞춰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요리는 이런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요리'야말로, 우리에게 '일체감'을 느끼게 해 주는 얼마 남지 않은 수단이다. 매일 주는대로 받아먹기만 했던 나는 늦게서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요리 행위는 식재료의 선택에서부터 식사, 심지어 그것을 소화해 내보내는 과정까지, 온전히 우리 스스로 해낼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서의 요리. 부서져 버린 현대인의 자아 재조립을 위해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이 도입되고 있지만, 난 요리로써 자기 회복을 경험했다.


자아의 섬세한 재조립을 요리에 투영하는 것은 잃어버렸던 '미식'의 경험마저 되살려준다. 물론 확실한 레시피와 건강한 식재료의 뒷받침이 없다면 성질만 나겠지만.


패스트푸드, 배달 음식은 이런 일체의 경험들을 사보타주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것을 허용해버리고 만다. 사보타주란 원래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니까.


'맛있다'의 유혹

대체 무엇을 위해? © Nyaya

음식을 선물한다는 것. '선물'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눈다'는 말도 적당하겠다. 어떤 표현을 하든 간에, 다른 사람에게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을 내어주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하다.


자취생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요리라고 부를 만한 '그럴싸한 것'을 만들어, 집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내어줬다.

한 입의 불안함. 한 마디 단어의 갈구.

'맛있다.'라는 상투적 표현을 듣는 대신, 친구들의 놀라는 얼굴을 봤다.

그 표정은 절대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로 정말 친한 몇몇에겐 사과잼을 대량으로 만든 다음 소분해서 선물해주거나, 집에 놀러 올 때면 간단하게 파스타나 감바스를 해주기도 한다. 식중독이나 배탈이 나면 책임 안 진다는 말을 넌지시 던지면서.


사실 난 초심을 어느 정도 잃었다. 때때로 혼자 해 먹는 요리는 귀찮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음식을 '선물'하는 건 순수하게 신나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맛있다'는 단어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 한 단어만으로도 충분한 보답이 된다. 여기에는 물건을 교환가치나 교환가치 기호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상품화의 논리가 들어가지 않는다. 경영학적 마인드로 완고하게 균질된 내게조차 그렇다.


산산조각난 세상에서 '미식'의 경험을 되살려주고, 그 기쁨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누렸으면 하는 마음. 지나치게 과장되고 거창한 표현을 빌자면, 이게 내 음식의 선물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냥 '맛있다'는 짤막한 한 마디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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