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주 보며 섰다
나를 덮치기 직전인
거대한 파도더미 앞에
찬바람이 후욱 불었다
잠시 숨을 멈추었다
북벽 하단부부터
천천히 고개를 들어
고 정광식이 등반했던 루트를
따라가 보았다
저기가 신들의 트레버스
저기는 하얀 거미
저곳은 죽음의 비박…
하얀 스크린 위로
그들의 사투가 펼쳐졌다
힌터슈토이서 트레버스가 추정되는 지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독일팀이 추락했던 곳이 저기구나
구조대 5m 앞에서
토니 쿠르츠가 동사한 곳은 저기
정상부는 블랙홀처럼
등반가들의 땀과 눈물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4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암벽등반을 배워 그들처럼
아이거 북벽을 오르고 싶은데
다음 방문 때는
아이거 트레일을 걷기로
나에게 약속했다
한참을 바라보다 돌아서는데
내 발목을 잡는
차갑고 쓸쓸한 이 느낌은…
2024. 5. 15, 아이거 북벽 밑에서
표지사진 : 클라이네 샤이데크역과 아이거 북벽
하부사진 : 숨 죽이며 바라보았던 아이거 북벽
(스케치: 헤비스톤)
이전에 올린 <아이거 북벽> 글입니다
https://brunch.co.kr/@kjsstone/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