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김여사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비스톤 Jun 01. 2023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1

주왕산 추억

  미셀(그녀의 애칭)을 만 후 처음 맞은 여름방학이었다. 나를 비롯한 친구 다섯은 의기투합해서 여자 친구들과 함께 주왕산으로 1박 2일 놀러 가기로 했다. 안동이 고향인 종호가 숙박 및 교통편 등 전체 일정을 짰다. 다행히 여자 친구들도 부모님을 잘 설득(?)해서 모두 함께 갈 수 있었다.


  부전 역에서 통일호 열차를 타고 안동 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주왕산 터미널까지 갔다. 거기서 민박집까지는 걸어서 갔다. 10명이 함께 투숙할 큰방에 짐을 정리하고 주왕산 산행에 나섰다. 대전사에서 출발한 다섯 커플은 사방에 퍼진 초록향기를 맡으며 따로 또 같이 산새처럼 재잘거리며 걸었다.   

   

  용추폭포에 도착하자 커플마다 사진 찍느라 분주했다. 종호는 삼촌한테 빌려온 카메라로 친구들 예쁜 모습 찍느라 바빴다. 절구폭포를 거쳐 경치가 제일 좋다는 용연폭포에 도착했다. 신발을 벗고 바지도 걷고 폭포 가장자리로 들어가서 머리를 감고 다슬기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때 슬며시 장난기가 발동했다. 종호에게 ‘사진 잘 찍어라’ 얘기하고는 물속 고기를 구경하고 있던 미셀 뒤로 다가가서 번쩍 들어 올렸다.


  “엄마야!~~” “‘스톤씨 사랑해요’하면 놓아주고 안 하면 저기로 던집니다!”. 친구들이 재미있다고 합창했다. “사. 랑. 해!. 사. 랑. 해!” “ 마지막 셋 셉니다. 하나아. 두 우울, 세에에에엣!” 던지는 시늉. “ 스톤씨, 사랑해요!” 앗싸, 성공이다.

    (그 순간 종호가 찍은 작품)


  정상까지 가는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웠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소프라노 아리아처럼 들려왔다. 걸어가는 동안 친구들이 미셀에게 ‘안긴 기분이 어땠냐’는 둥 짓궂은 질문도 했는데 그녀는 계속 웃고 있었다. 정상에 오른 젊은 청춘들은 푸른 하늘과 주왕산 암봉의 신비로움을 바라보며 내일의 꿈을 그려보았다. 나는 그녀 뒤로 살며시 다가가서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 둘의 앞날에 늘 푸르름이 함께 하길...”   

  

  내려와 씻고 나서 저녁 준비에 분주해졌다.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여 민박집 평상 위에 밥, 반찬, 술, 안주거리 모두를 펼쳐놓고 즐거운 식사와 반주를 즐겼다. 미셀도 막걸리를 두 잔이나 마셨다. 남자들이 설거지를 번개처럼 끝냈고 방에 모여 여흥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전설이 돼버린 수건 돌리기 게임을 하고 나서 돌아가며 노래 부르기를 했다. 내 차례가 돌아오자 미리 생각해 둔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를 불렀다. 미셀이 환호하며 박수를 크게 쳤다. 몇 명을 거쳐 드디어 그녀 차례가 되었다. 미셀이 노래를 시작할 때 침이 꼴깍 넘어갔다.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엉?, 방 안에 있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쏟아졌다.

“오늘 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아, 가슴이 쿵쾅거렸다. 미셀의 노래 후에는 누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여흥시간을 마치고 각 커플끼리 흩어져서 방에서, 마루에서, 평상에서 밤하늘을 보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분위기였다.    

 

  미셀에게 잠시 걷자고 했다. 달 빛, 별 빛 가득한 컴컴한 시골길. 개구리 울음소리를 따라 대전사 입구까지 200미터쯤 되는 거리를 걸으며 음악과 학교생활을 얘기했다. 하늘을 바라보며 윤동주, 데미안 얘기도 했다. 외워둔 돈 맥클린의 빈센트 가사를 써먹으며 별 밤 얘기도 했다.

절 입구에 오니 사방이 암흑이었고 개구리 울음소리만 들렸다.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미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녀가 가만히 있었다.


와락 껴안으며

기습 키스를 시도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표지사진 출처: 인터넷


글 제목은 이장희 노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가사를 인용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를 두 번째 만나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