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비스톤 Apr 13. 2023

이 음악도 들어보세요

클래식에 발 담그기

" 이 음악도 한번 들어보세요"


 1990년대 초로 기억한다. 아내랑 두 시간쯤 걸리는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시동을 걸자마자 테이프를 밀어 넣었다. 녹음해 둔 하드락이 머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달리고 있을 때 아내가 말했다. “ 클래식 좀 들으면 안 될까요? ” “ 운전 중에 잠 오면 안 되는데...” “ 아, 알겠어요. 계속 좋아하는 곡 들으세요 ” (그 당시는 순한 양 + 천사). 왕복 4시간 동안 내리 팝 음악과 대학가요제 노래만 들었다. 다음날, 퇴근 후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아내가 CD 한 장을 내밀었다. “ 이 음악 한번 들어 보세요”. 정경화 ‘콘 아모레’라는 바이올린 소품집이었다.     

(정경화 콘 아모레 CD 표지)     


  주야장천 팝 장르와 그룹사운드 노래만 듣는 나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내 음악 취향 변화를 시도했다. 당시에 클래식은 ‘엘리자를 위하여’나 베토벤 ‘운명’처럼 지극히 상식적인 곡만 알던 때였다. 좁은 거실에 함께 앉아 분위기 잡으며 콘 아모레 CD를 들어보았다. 한 곡 한 곡 가냘픈 바이올린 선율이 흘렀다. 몇 곡 듣고 나니 슬슬 노곤해지면서 몸속에 자리 잡고 있던 팝 선율이 슬며시 기어 나오려고 했다. 그러던 중, 어느 곡이 끝나고 다음 곡이 시작되는 순간 새로운 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보는 색깔과 두께의 문이었다. ‘ 아 이 곡 감미롭고 예쁘다. 무슨 곡이지? ’ 내 감각세포를 건드렸던, 나를 클래식 음악의 정원으로 발을 딛게 한 곡, <쇼팽 녹턴 20번>이었다. 그날 그 곡은 바이올린 소리를 내 가슴 깊숙이 날려 보냈다. 이 CD를 듣고 또 듣고 바이올린 소리가  귓바퀴에 촘촘히 음표 모양으로 박힐 만큼 들었을 때 김여사가 두 번째 CD를 건넸다.     

    (장영주 CD 표지)    

 

  장영주 연주 CD였다.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No1.>, 생상 <서주와 론도카프리치오소> 곡이 들어있었다. 소품으로 바이올린 선율이 귀에 익어서인지 여기 음악들도 듣기에 거북함이 없었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전곡이 길어 악장을 잘라서 들었고 (좋아하는 1악장을 자주 들었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9분 정도 연주곡이어서 한 번에 다 들었다. 어느 날 운전 중에 내가 이 시디를 틀어놓고 지휘를 하는 지휘자가 된 나를 발견하게 된 느낌이란! 두 달 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세 번째 음반이 결정타였다. 당시 나는 팝 뮤지션의 LD (DVD 나오기 이전 영상이 나오는) 음반을 수집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클래식 LD를 구입했다. 정경화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1983년 실황 영상). 이 곡을 처음 보던 (듣던) 중간에 내 몸이 서서히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하드록 밴드 연주에서 받던 감흥과 또 다른, 이게 뭐지?... 바이올린 소리와 정경화의 신들린 연주 매너에 홀딱 반해버렸다.     

(정경화 연주 장면 - 소장 LD)     


  이 시점부터 바이올린 협주곡 수집과 연주자별 음반을 들어보기 시작했다. 정 경화, 장 영주, 강 동석, 야샤 하이페츠, 이작 펄만, 기돈 크래머, 안네 소피 무터, 막심 벤게로프... 협주곡 전 곡 듣기는 인내심을 필요로 해서 좋아하는 악장을 주로 들었다. 멘델스존 1악장, 차아콥스키 2악장, 부르흐 1악장, 시벨리우스 1악장...     

(야샤 하이페츠 컬렉션 CD 표지)     


  바이올린 곡들이 어느 정도 귀에 익을 무렵 첼로와 피아노 연주곡으로 넘어갔다. 초기에 첼로는 <아르페지오네>, <쟈린의 눈물>부터 시작했고, 피아노는 쇼팽의 녹턴과 프렐류드 <15번, 24번>, 베토벤 <소나타 14번 1악장, 17번 3악장>,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3번>을 자주 들었다. 다음으로 교향곡을 들었는데 잘 알려진 유명 곡들 위주로 들었고, 1시간짜리 <말러 교향곡 1번>을 한 번에 다 들어보기도 했다. 그 후로 장거리 운전을 할 때는 팝과 클래식, 서로가 원하는 곡을 원하는 비율로 들어도 둘 다 만족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아내의 작전이 성공했다. 브라보!                                                                

(나를 피아노 음악으로 인도한 글렌 굴드, 사진 출처 : 인터넷)

 

(당시에 아내가 선물했던 추억의  CD 중 일부)   

  

  직장생활 35년, 남들도 대부분 그렇듯이 다사다난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해소 방법은 음악 들으면서 등산하는 것이었다. 48년 동안 들어온 음악, 25년 동안의 주말등산. 이 두 가지가 내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지켜주었고 지키고 있고 지켜줄 것이다. 요즘도 지역 문화예술회관에서 음악공연을 하면 장르를 불문하고 아내와 종종 가고 있다. 아내가 나에게 준 몇 가지 선물 중 하나가 클래식을 알게 해 준 것이다. 올해 아내의 60번째 생일날 깜짝 선물을 위해 알바 자리 하나 찾아봐야겠다.     




추천 동영상 : 정경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유튜브, 하늘색 드레스),

정경화 부르흐 바이올린협주곡 (유튜브, 2015 DMZ 평화콘서트)


https://youtu.be/BnHtAys75B8

쇼팽 녹턴 20번, 한수진 (You Tub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