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아들이 대기업에 입사하고 몇 년 후 미국 LA지사로 발령이 났다. 그곳에서 5년간 근무하는 동안 딸 둘을 낳았다.
둘째 손녀가 태어난 92년도에 생금은 며느리를 도우러 미국으로 갔다. 넉 달 동안 머물면서 손녀 둘을 돌보았고 주말에는 캘리포니아 인근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아들은 틈틈이 여행사를 통해 유명 관광지도 여행시켜 드렸다. 여러 곳을 구경했는데 훗날까지 오랫동안 생금의 기억에 남는 것은 라스베가스와 그랜드캐년이라고 했다.
생금은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미국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살을 붙여가며 놀러 다녔던 곳을 설명했다.
♧♧동에 머물면서 손주들이 보고 싶으면 아들네 집으로 갔고, 명절 때나 생일날에는 아들 며느리들이 손주를 데리고 왔다.
손자손녀들이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던 생금은 자신도 점점 나이가 들어감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세월이 더 흘러 생금이 팔순이 되자 건강이 안 좋아졌고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다시 큰 아들집으로 들어갔다.
바깥출입이 어려워지고 위 기능까지 떨어지면서 생금의 건강이 더 악화되자, 아들들은 의논 끝에 어머니를 노인전문병원에 모셨다.
구순이 다 되어 병원에 들어간 생금은 건강을 조금씩 찾게 되었고 병실을 찾아오는 아들딸 며느리 손자손녀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들들은 추억거리를 하나라도 더 남겨 드리려고 가능할 때마다 생금을 밖으로 모시고 나갔는데 벚꽃시즌에는 고향 삼락둑으로 가서 (휠체어로) 벚꽃길을 거닐며 옛날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았다.
생금이 잘 부르는 노래를 영상에 남겨 놓으려고 손주들과 기타 치며 노래하는 시간도 가졌다.
올해에 들어오자 생금은 기억력이 더 떨어졌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계속했다.
갑수 씨 집안에 시집와서 농사짓고 자식들 키우며 도란도란 잘 살았다
자식들이 상 타오면 방에 가득 걸어놓고 동네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집이 어려웠을 때 자식들이 힘써줘서 남의 집 전세를 살지 않았다
병원에 있을 때 아들 며느리들이 자주 찾아와 줘서 고맙다
너희들한테 많이 미안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혼자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져서 고관절을 다쳤다.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치료과정에서 폐렴이 와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아들딸 며느리들이 100세 잔치를 해 준다고 했는데… 생금은 기다리지 못하고
95세의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생금은 눈을 감으면서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할 일을 무사히 다 마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몸을 다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아들딸 며느리들에게 전했다.
화야, 장남으로 태어나 집안일 돌본다고 고생 많았다
환아, 집이 어려웠을 때 니 도움이 컸다, 고맙다
옥아, 집 어려울때 살림 보탠다고 고생 많았다
석아, 병원에 있을 때 자주 와줘서 고맙다
철아, 멀리 있어서 자주 못 온다고 매일 전화해 줘서 고맙다
며느리들아, 우리 아들들 하고 잘 지내줘서 고맙다
생금은 눈을 감으면서 아들딸 며느리들에게 인사말을 남겼다.
나 이제 소풍 잘 마치고 아버지 곁으로 간다
그동안 나 돌본다고 애 많이 썼다
너희들 덕분에 행복했단다
먼 훗 날 하늘나라로 오거든 그때 다시 만나서 즐겁게 살도록 하자
늘 건강하고 행복하거라
23년 10월, 청명한 가을날에
생금 씨는 하늘나라로 가서 그리운 갑수 씨를 만났습니다.
생금 씨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강하고 따뜻한 엄마였습니다.
엄마의 무한했던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