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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스톤 Jan 29. 2024

겨울비가 내리면 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하얀 눈을 밟으러

올겨울에도 울산 근처에서 눈을 밟고 있다.

겨울에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울산인데 비가 오면 영남알프스 산 정상부에 눈이 쌓인다.

지난주에 비가 조금 내려서 울주군에 있는 간월산을 올라 정상 부근에서 눈꽃을 보았다.

그리고 며칠 전, 울산지역에 비가 제법 많이 왔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한다. 어제저녁에 배낭을 챙겨 오늘 아침에 영남알프스로 달려갔다.


어느 산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눈 경치가 제일 좋은 가지산을 택했다.

석남터널로 가는 국도는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도로에 눈이 얼어있으면 종종 통제한다)

등산코스는 주로 석남사 옆으로 오르는데 오늘은 오후 약속 때문에 최단 코스를 택했다.

석남터널 근처에 주차하고 완전무장해서 등산로로 들어섰다.

며칠 전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서 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다.


흥얼거리며 삼십여분을 오르자 등산로에 눈이 보여서 아이젠을 착용했다.

나무계단이 끝나는 지점부터 눈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었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쌀바위가 백설탕을 뒤집어쓴 채 화산이 폭발하듯 입김을 토해내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았다. 모두들 밝은 얼굴이었다.

(쌀바위)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는데 오래전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어느 겨울날, 협력사 출장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하얀색 옷을 입은 신불산이 눈에 확 들어왔다.

‘와~~ 눈이다’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두 시 언저리였다. 잠시 생각하다가 핸들을 작천정 쪽으로 돌렸다.

간월산장 앞에 도착해서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트렁크에는 항상 등산 준비가 되어있었다) 등산로 입구로 들어서는데

(당시에 있던) 매점 아주머니가 보시더니 "지금 올라가세요? 내려올 때 어둡고 미끄러워서 위험한데요"

“아 예,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올 겁니다"

“지금 두시가 넘었는데요? 요즘 다섯 시만 되면 캄캄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섯 시까지 내려올게요. 손전등도 있습니다”


군대에서도 안 해본 유격훈련이었다.

등산 초입부터 눈에 발이 푹푹 빠졌다. 홍유폭포를 지나자 등산로는 안 보이고 사람 발자국도 없었다.

그동안 올랐던 감각으로 올라야 했다. 신불산은 이백 번쯤 올라봐서 주위 나무, 바위를 보면 올라갈 자신이 있었다.

대충 시간을 계산해 보니 세 시간 내에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와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눈이었다. 주말 산행 십 년 차쯤 되었으니 평소 같으면 그 시간에 주파 가능한데 눈길에서는 무리였다.


도전!

아무도 없는 눈 쌓인 산,  마치 특수부대 대원이 훈련하듯이 치고 올라갔다.

설경이고 나발이고 정상까지 한 시간 사십 분 만에 올라가야 했다.

다행히 길을 잃지 않고 헉헉거리며 잘 찾아서 올랐다. 정신없이 올랐다.

까마귀 몇 마리가 나를 따라오며 깍깍거렸다.

(나를 응원해 주던 녀석.  

그 날 찍었던 사진입니다)


정상에 있는 돌탑이 눈에 보이자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딱 한 시간 사십 분 걸렸다. 눈에 미친 건지 산에 미친 건지 이러는 나 자신이 무서웠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는 거의 뛰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위험하게 내려왔다.

간월산장에 도착하니 5시 10분. 정확하게 3시간 걸렸다.

매점 아주머니가 나를 보시더니

“걱정했는데 포기하고 잘 내려왔네요”

“정상까지 갔다 왔는데요”

“예? "

아주머니 표정이 묘했다. 놀란 건지 믿지 않는 건지…

그날 이후에도 미친 산행을 몇 번 더했다.



중봉에 다다르니 온통 눈세상이었다.

스마트폰 나오기 이전에는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디카로 찍었는데 지금은 말로 ‘찰칵‘하면 사진이 찍히니 세상 많이 편해졌다.

눈 삼매경에 빠져 입으로 ‘찰칵찰칵’ 거리고 있으니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미소 지었다.

얘들아, 나 지금 혼자서도 잘 놀고 있지?’


정상에 올라가자 인증사진 찍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평일이라서 줄이 길지 않아 좋았다. 뒷사람에게 부탁해서 인증사진을 찍었고

눈 산행 때 즐겨하는 360도 동영상도 찍었다.

정상 근처에 있는 대피소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거의 다 차 있어서 겨우 한자리 잡았다.

라면을 주문하고 나오는 동안 찍었던 사진을 살펴봤다.

아내가 보온통에 넣어준 따뜻한 밥을 말아 후루룩 먹었다.

김치와 먹는 라면밥이 꿀맛이었다.


오늘도


아름다운 지구 위에서  

산행하는 동안


자연과 하나가 되어

즐거운 오감놀이를 했다.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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