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상자의 질량

소설

by 김준완

아마 나는 이미 너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별 이후 네가 스레드에 올리던 짧은 문장들 때문이었다. 사랑을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더 많이 돌아보는 말투. 삶을 날카롭게 베지 않고 사람 쪽으로 천천히 기울어가는 문장들. 사진뿐이었지만 신뢰가 먼저 생겼다. 누군가의 얼굴보다 태도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7개월 전 그날, 밸런타인이라는 핑계로 나는 마침내 어떤 문을 열었는지도 모른다. 질문에 답하면 자동으로 대화창이 열리는 구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너의 질문은 단순했다.
“초콜릿 상자에는 보통 몇 개의 초콜릿이 들어 있을까.”

나는 원래 모르는 사람에게 DM을 보내지 않는다.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 발생하는 어떤 서사를 경계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말을 거는 게 아니라 그저 답을 고르는 일이라 생각하며,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잘 모르겠다’고 눌렀다. 그 순간 너의 이름이 상단에 떴다. 내가 문을 연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문 안으로 발을 들인 느낌이었다.

나는 내 직업을 말했고, 아마 내 질문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는 전 남자 친구 이야기를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를 좋아하는 이유조차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너는 그 모든 이야기를 마치 타인의 서사를 읊듯 제삼자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었다. 상처를 말하는 사람치고는 너무 차분했고, 미련을 말하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단정했다. 상처보다 먼저 도착하는 그 서늘한 태도 같은 것이 너에게는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 남자 친구는 말을 줄이는 대신 목소리만 키웠고, 너의 다정한 문장들을 ‘읽기 피곤한 숙제’처럼 취급했다고 했다. 매번 먼저 연락하고, 먼저 사과하며 너는 빈손으로 그 관계를 붙잡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너의 사랑이 기이하게 보이지 않았다. 사랑은 언제나 그런 식이니까.

다만 네가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말들 뒤에 얼마나 많은 침묵이 겹겹이 접혀 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초콜릿 상자 속에 든 것이 달콤함뿐만 아니라 쓰디쓴 인내와 차마 전하지 못한 말들의 개수라는 것을, 너는 이미 알고 있었을까. 너는 너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꼭 그 말들이 나를 배려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건 너와의 대화 속에 항상 있었다.

삶은, 사랑은 내가 누군가를 택하는 방식으로 오기도 하지만 마시는 공기를 감사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사랑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미 너라는 상자의 무게 쪽으로 아주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