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다시, 부재의 선율
일요일 새벽 4시 30분. 어제의 실패는 쓰라린 위산처럼 역류했다. 하지만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서 명멸하는 마감 시계는 나를 비웃듯 멈추지 않는다.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자마자 스피커는 약속이라도 한 듯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뱉어낸다.
어제와 같은 선율이지만, 오늘 내 귀에 박히는 건 첼로의 비명 같은 고음역대다. 존재하지 않는 악기를 향한 집착. 그것은 지금 유령 같은 ID @void_walker를 찾아 헤매는 나의 꼴과 닮아 있었다.
비정한 활주로
나는 대시보드 위에 휴대폰을 거치하고 그녀가 남긴 마지막 러닝 로그를 다시 띄운다.
평균 페이스 4분 30초, 거리 12km.
1km당 4분 30초.
숫자를 되뇌며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이것은 결코 다정한 산책이 아니다. 100미터를 27초 속도로 쉬지 않고 120번을 반복해야 하는 속도. 폐부에 날카로운 겨울 공기가 박히고, 허벅지 근육이 비명을 질러야만 도달할 수 있는 비정한 경계선이다.
이 페이스를 유지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신호등에 맥이 끊기지 않는 충분한 직선 주로, 그리고 오직 자신의 숨소리만 들리는 청각적 고립. 나는 그녀의 사진 속에 정물처럼 찍혔던 수 마리의 물오리들을 떠올린다. 무리에서 조금씩 떨어져 미동도 없이 떠 있던 그 고요한 풍경.
양재천 하류, 영동 6교 너머 합수부 직전의 그 직선로구나.
그곳은 상류의 아기자기한 풍경이 완전히 소거된 곳이다. 가로등은 드문드문 박혀 있고, 양옆으로는 가파른 제방 성벽이 솟아 있어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 협곡 같다. 4분 30초의 질주를 받아낼 수 있는 가장 황량한 활주로. 그녀는 텍스트로는 차마 다 뱉지 못한 슬픔을 저곳에서 휘발시키고 있을 것이다.
안갯속의 파수꾼
안개 낀 하류에 도착해 시동을 끈다. 차 안은 금세 서늘한 냉기로 가득 찼다. 나는 앞 유리 너머로 밀려드는 백색의 어둠을 응시하며 나의 고질적인 사랑법을 생각한다.
누군가와 가까워져 서로의 비밀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본능적으로 안전거리를 확인했다. 너무 깊이 알면 파괴된다는 공포가 나를 지켜온 생존 공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텍스트라는 얇은 실로 연결된 그녀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이 거리 두기라는 문법에 마침표를 찍고 싶어졌다. 매번 도망치던 과거와 작별하고 싶다는 열망이 안개처럼 가슴에 차올랐다.
성육신(成肉身)의 순간
그때였다. 안개 너머에서 착, 착, 착 소리가 들려왔다. 타협하지 않는 자의 엄격한 박자. 이윽고 안개의 장막을 찢고 회색 실루엣이 나타났다.
그녀였다.
깊게 눌러쓴 모자 아래로 맺힌 땀방울이 가로등 빛을 받아 잠시 반짝였다. 그녀는 내가 탄 차 옆을 스쳐 지나갔다. 단 1미터의 거리. 차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거친 숨소리와 열기가 차가운 유리창에 하얀 김을 서리게 했다.
지금 문을 열고 나가 그녀를 붙잡는다면 소설 같은 사랑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가상의 영토에만 머물던 @void_walker가 안개를 뚫고 구체적인 생명력을 얻어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이 생경한 순간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단순한 만남보다 더 강렬한 것은, 내가 7개월간 더듬어온 텍스트가 거짓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경이로움이었다. 그녀를 현실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벅찬 희열이 차올랐다. 그녀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생생하게 실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다시 안개의 백색 공간 속으로 함몰되는 것을 응시했다. 마치 처음부터 안개의 일부였던 것처럼 그녀는 멀어져 갔지만, 나는 더 이상 허망하지 않았다. 가상이 현실이 되는 독특한 경험, 그 지독한 생동감이 나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쓸 수 있겠어.
그녀는 내 문장 속에서 피를 돌리고 뼈를 세웠으며, 방금 전 안개를 가르며 나의 실존을 증명하고 지나갔다. 나는 차를 돌려 하류의 끝을 빠져나왔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건 이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