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세상이 온통 어둠에 잠겨도 상관없었습니다.
나의 시선이 지독한 결심이 되어 당신의 이마에 닿을 때,
당신은 이미 현실의 중력을 벗어난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그 순간, 당신은 더 이상 살과 피를 가진 이가 아니라
차가운 달빛 사이를 소리 없이 흐르는
백합의 향으로 내 곁에 남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은,
당신의 맥박을 멈춰 세워서라도
그 찰나의 희미한 빛을 내 눈동자에 영영 가두겠다는
지독한 탐닉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날 나의 오만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로운 당신의 숨결을 짓이기고,
오직 나만이 해독할 수 있는 푸른 잔영으로 당신을 다시 빚어내었습니다.
그 잔영을 쥐고 있는 나의 손끝이 이토록 시린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형벌을 내린 주체가 사실은 나 자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숨이 멎을 듯한 그 향기 속에서, 당신은 영원히 흐르고
나는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유일한 목격자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