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놀이 5

essay

by 김준완

삶은 관념의 투영이며, 그 관념은 결핍된 욕망의 시원(始原)에서 발원합니다. 태어남 이전과 죽음 이후라는 두 거대한 암흑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에게, 삶은 가치중립적인 실재가 아니라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군림합니다. 이 막막한 절벽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그 벽 위에 ‘내러티브(Narrative)’를 새기는 일입니다. 그것이 철학이든, 종교든, 혹은 시의 형태를 띠든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이 발명한 모든 정신적 유산은 본래 알 수 없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처절한 서사적 안간힘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이러한 규정에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대적 진리를 믿는 이들에게 삶을 단지 ‘이야기’라 부르는 행위는 신성모독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하지만 인정해야 합니다. 삶은 본질적으로 ‘모름’의 영토입니다. 우리는 칠흑 같은 심연 속에 홀로 던져진 존재일 뿐이며, 그 무(無)의 공간에는 원래 어떤 이정표도 놓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절대적인 어둠 앞에서 우리는 어떤 실존적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우리가 구축한 모든 지적 서사는 캄캄한 공허 속에서 켠 단 한 자루의 성냥개비에 불과합니다. 성냥갑의 거친 측면을 제 몸으로 긁어 비명을 지르며 타오르는 그 짧은 연소. 그 빛이 허락하는 아주 좁은 반경만이 우리가 ‘진리’라 명명할 수 있는 유일한 영토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성냥의 운명은 빛을 내는 것에 있지 않고, 제 몸을 재로 바꾸어가는 소멸의 과정 그 자체에 있습니다. 진리란 획득 하여 소유할 수 있는 고정된 유물이 아니라, 대기 중으로 흩어지는 뜨거운 열기와 휘발되는 섬광 속에만 잠시 머무는 상태입니다.

​성냥불이 꺼진 자리에는 필연적으로 재가 남습니다. 제 몸을 다 바쳐 빛과 맞바꾼 뒤, 검게 비틀린 채 추락하는 그 연약한 잔해들. 재야말로 진리가 이 지상에 잠시 머물렀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입니다. 재는 뜨거웠던 생성의 기억을 보존한 채 차갑게 식어버린 ‘언어의 화석’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빛나지 않지만, 한때 어둠을 밀어냈던 치열한 마찰의 기록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우리가 쓴 시와 철학, 그 모든 내러티브는 결국 성냥이 타버린 뒤 바닥에 수북이 쌓이는 재의 더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폐허를 딛고서야 다음 성냥을 켤 용기를 얻습니다. 영원한 빛이 없다는 절망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멈추지 않는 창조자로 만듭니다. 재는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될 빛의 기도가 놓일 가장 낮은 제단이기 때문입니다. 삶은 결코 완독 할 수 없는 책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어대는 성냥불 사이로 얼핏 비치는 벽면의 낙서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