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프롤로그
식탁 위엔 어제 먹다 남은 당근 조각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그것을 갉으며 나를 낳았고,
나는 그것을 닮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서로의 비린내를 숨기기 위해
어항 속 주황색 물을 나눠 마시는 공범들이다.
이곳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나의 뿌리를 스스로 잘라내는 것뿐이었다.
1. 태생 (胎生)
어항 속 물은 단 한 번도 투명하지 않았다.
천 년 동안 정지해 있던 할머니의 등지느러미가 짓물러
수조 가득 농축된 주황색 소금물이 되었을 때,
비로소 태초의 양수가 되었다.
둥근 유리벽 안에서 우리는 붕어의 눈알을 나눠 가졌고,
빛이 닿지 않는 바닥에서 서로의 꼬리를 탯줄로 착각하며 살았다.
2. 식성 (食性)
엄마는 쥐의 앞니를 빌려 할머니의 잠을 갉았다.
딱딱한 당근 심장 같은 유전자가
엄마의 목구멍을 넘어 혈관으로 터져 나갈 때,
수조 밖으로 나가지 못한 비명이
주황색 거품이 되어 올랐다.
식탁 위엔 씹다 버린 지느러미와
뿌리째 뽑힌 손가락들이 굴러다녔다.
엄마는 태내에 잠긴 나에게 그 걸쭉한 즙을 밀어 넣었다.
3. 안면 (顔面)
그날, 내 얼굴은 당근 단면처럼 잘려 나간 채 태어났다.
산부인과 비닐장갑 위로 뚝뚝 떨어지는 것은
피가 아니라,
어항 속에서 오랫동안 발효된 낡은 금붕어의 기억이었다.
의사는 내 울음에서 물고기의 비린내를 맡았고,
거울 속 나는 나를 갉아먹던 엄마의 앞니를 발견했다.
4. 골수 (骨髓)
나는 내 얼굴이 당근이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엄마가 물려준 쥐의 앞니로 내 뺨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후드득 떨어지는 것은 주황색 파편들,
할머니의 잠과 엄마의 허기가 뒤섞인 단단한 껍질들.
깎아낼수록 드러나는 것은
투명한 속살이 아니라
더욱 짙게 타오르는,
비린내 나는 혈색이었다.
유전은 껍질이 아니라,
골수에 박힌 못이었다.
5. 종결 (終結)
나는 어항의 유리벽을 들이받아 깨뜨리고
가장 날카로운 파편으로 내 눈알을 후벼 판다.
그 구멍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천 년 전 할머니가 보았던 고요한 수평선이었다.
이제 내 얼굴엔 당근 단면 대신
깊고 검은 구멍이 뚫렸다.
나는 나를 갉아먹던 유전의 입술에
깨진 유리 조각을 물려준다.
더 이상 주황색 즙이 흐르지 않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