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 사이

by 김준완

〈0과 1 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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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1 사이, 그 틈을 향한 발걸음
자신의 생각을
결대로 포를 뜨듯 잘게 썰어내는 하루는
평온한 날들보다 훨씬 더 스펙터클하다.

그 스펙터클함이란,
한눈을 팔았다간
내 안의 내가 파놓은 얼어붙은 강물 위 함정에 말려들어
끝 모를 심연으로 추락하는
위태로운 곡예와 같다.

날카로운 날을 세워 삶을 잘게 썰다 보면,
그 단면 사이로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
아니, 오직 나만이 알고 싶지 않았던
어두운 파편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것은 마치
0과 1 사이라는 좁고도 아득한
무한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는 그림자와 닮아 있다.

찰나의 무한 속에서
어느 한 지점을 붙들고
악착같이 미분해 내려가다 보면,
부서진 거울 조각 위
피 묻은 손 하나가 나를 응시한다.

아무리 씻어내려 해도
손끝에는 붉은 낙인만이 선명하다.

나는 피로써 피를 씻어내고,
다시 그 피로 상처를 닦아내는
악순환의 굴레에 갇혀 있었던지도 모른다.

그 어둠 속에는
끝 보이지 않는 구멍을 향해
무지성으로 돌진하는 개미 떼가 있고,
그 행렬의 끝에는
집단으로 질식해 죽은 절망의 사체들이 쌓여 있다.

샅샅이 삶의 하루를 뒤적거린다는 것은
이처럼 잔인한 자아의 민낯을 직면하는 일이다.

나는 나 자신을 다 안다고 믿었으나,
실은 나조차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의 괴물을 키우고 있었다.

시커멓게 타버린 입술과
퉁퉁 부어오른 핏빛 눈망울을 한 채,
나는 나를 집어삼킬 듯한 허기에 사로잡혀
0과 1이라는 좁은 감옥 안에 갇혀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 비명이 가장 날카롭게 고조되던 순간,
견고했던 0과 1의 벽에
가느다란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더 이상 피로 상처를 씻어내지 않아도 좋았다.
억지로 나를 해체하고 먹어 치우려던
강박의 칼날을 내려놓자,
비로소 상처 위로 마른 딱지가 앉고
새살이 연둣빛으로 돋아나기 시작했다.

어둠 속으로 돌진하던 개미들의 행렬은
자살이 아닌,
빛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인생이란 결국
그 좁고 숨 막히는 0과 1 사이에서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틈새를 발견하고
그 틈을 향해 조용히 발을 내디디는 과정 그 자체였다.

닫힌 세계를 깨고 나온 발걸음은
이제 더 이상 울부짖지 않는다.

0과 1이라는 숫자의 감옥을 넘어,
이름 붙일 수 없는 무한한 바깥의 공기를 향해
나는 비로소
잔잔한 숨을 내뱉으며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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