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회개하는 자들이
제 죄를 쫓아 달아나는 동안,
엿보는 자는 눅눅한 그늘 속에 몸을 구부린다.
생사를 알 길 없는 것들은
소리 없이 증발하고,
담벼락 너머
서로를 닮은 눈동자들만
곁눈질로 번진다.
기울기가 가파른 절벽 끝에서
악마들은 날 선 검 위로
서로의 비명을 벼린다.
낡은 사랑의 끈을 쥔 여인은
발가락 끝으로
낭떠러지의 깊이를 가늠한다.
불멸의 허기를 채우지 못한 엄마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갯벌 같은 땅속에 정수리를 박는다.
누구의 소유도,
관계도 증명하지 못하게 된 문장들은
주인을 잃고
비문이 되어 흩어진다.
켤레가 될 수 없는
검정 고무신과 흰 고무신은
등을 돌린 채
서로의 뒤꿈치만 엿본다.
치매 걸린 고양이는
제 꼬리를 잊은 채
사흘 밤낮을 잔다.
그럼에도 삶은,
이 모든 어긋남을
응시하는 눈동자 속에서
아주 가끔
투명한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