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어느 날 불현듯
사지 달린 짐승들이 까치발로 뒷걸음질 친다
밟고 지나간 자리마다 흙은 골을 드러내고
생명의 기척은 비명도 없이 함몰된다
가까이 다가가니, 식은 영혼들만 그림자를 잃은 채 서성인다
산 자의 온기를 탐하던 눈빛이 얼마나 가벼운 먼지였는지 확인한다
삶에 체해 명치가 딱딱하게 굳을 때면
목덜미를 태울 듯 쓰디쓴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이켜고 싶다
빠르게, 뜨겁게, 그리고 차마 삼키지 못한 채 어설프게
채워질 리 없는 갈증은
이미 바닥난 잔 속에서 어떤 파문을 일으킬까
미련에 중독된 사람들은 이제 뒤돌아보지 않기로 한다
녹슬어가는 어제 대신, 아직 오지 않은 창백한 새벽만을 응시한다
낡은 꽃잎들마저
제 무게를 잊고 무뎌지는 한적한 오후,
죽은 영혼들이 숨을 참으며 서 있는 발치마다
이름 모를 풀들이 악착같이 흙을 밀어 올리며 아우성친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숨이 먼저 나가고 말은 뒤에 남는다
죽어가는 동안에는
심장이 식어도 체온은 한참을 붙들려 있다
사방에는
차마 죽지 못한 것들만 죽어 있다
살고자 하는 의지도, 죽으려는 용기도 없이
그저 관성대로 흐르다가
어느 순간,
아무 냄새도 남기지 못한 채
잠시 멈춰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