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사람이 모두 떠난 자리에, 비로소 사람만 그득하다. 물리적인 육신이 사라진 진공의 자리에는 그가 흩뿌리고 간 미세한 파동과 체취가 습기처럼 엉겨 붙는다. 시야에는 아무도 없으나 공기 중에는 여전히 누군가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역설. 그것은 부재가 만들어낸 가장 선명한 존재감이다.
우리는 흔히 인연을 추억이라 부르며 박제하려 들지만, 진정한 인연은 뇌리에 머무는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피부 아래로 스며드는 삼투압에 가깝다.
어느 서늘한 저녁, 내 입술 끝에서 배어 나오는 낯선 억양은 사실 그가 내뱉던 고유의 리듬이다. 찻잔을 쥐는 손가락의 각도, 슬픔을 견딜 때 눈꺼풀을 떨며 밑바닥을 응시하는 그 서늘한 버릇들. 이 모든 것들은 기억이라는 서랍에 보관된 유물이 아니라, 나의 근육과 혈관 속에 이식된 채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사랑했던 이들의 보폭은 나의 걸음걸이가 되었고, 그들의 시선은 내가 세상을 번역하는 렌즈가 되었다. 그들은 나의 표피를 뚫고 들어와 뼈를 깎고 살을 붙여, 결국 지금의 나라는 '인간이라는 형태의 모자이크'를 완성했다.
그리하여 내 몸은 곧 내가 통과해 온 사람들의 기록 보관소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오롯한 '나'가 아니라, 나를 스쳐 간 무수한 타인들의 잔해와 온기가 겹겹이 쌓여 빚어낸 하나의 탐미적인 흔적이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사람이 그득한 이유는 자명하다.
내가 그들을 먹고, 그들이 나를 입으며, 우리는 서로의 몸속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인연을 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