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설적 삶의 고백

essay

by 김준완

우리는 정지해 있다고 믿는 땅 위에서
초속 30킬로미터의 속도로 우주를 질주하고 있다.

감각은 정지를 말하지만
진실은 회전을 말한다.

이 괴리,
이 불편한 진실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첫 번째 창문이다.

사람들은 아침 햇살 속에서
평온한 일상이 있다고 믿는다.

식탁 위에는 빵과 우유가 놓이고
다정한 안부가 오간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명징한 빛 아래에서도
무언가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밤새 창문을 통해 들어왔던
끈적한 시간의 잔해들이
우리 일상의 실핏줄 속에서
검푸른 보석처럼 공전하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삶은 곧 꿈이고
꿈은 다시 가장 생생한 삶의 촉감이다.

새벽 세 시의 고독이
고양이의 노란 눈을 빌려
나를 할퀴어댈 때

나는 비로소 인간의 이성이 세운
현실이라는 감옥에서 잠시 벗어난다.

기린의 다리를 가진 달팽이가 남긴
은빛 점액 같은 흔적을 바라보며

나는 오래된 예언자들이
파피루스에 남겨 둔 문장을
몸으로 읽는다.

누군가는 이것을 환각이라 부를 것이다.
누군가는 시적 상상이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아도
지구는 여전히 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상이라 부르는 이 견고한 세계의 밑바닥에도
언제나 야생의 신화가 흐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문을 나선다.

뺨에 닿는 공기가
사실은 별들의 체취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구두끈을 조이며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행성의 떨림을 느끼면서.

진실을 본 자의 삶이란
고통이라기보다

이 아름답고 기괴한 허구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하나의 탐미적인 축제이기 때문이다.


1. 〈 창문을 열면


새벽 세 시, 고독이 방 안을 스치면
누군가의 생이 무작정 할퀴어진다


밤새 뒤척이던 고양이는
노란 눈을 번득이며 깨어나고

수천 년을 날뛰던 네발짐승의 까마득한 유전이
그녀의 눈동자 속으로 쏟아진다


이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숨조차 멎은 듯


방생하고 싶으나
죽어서 살아온 영혼이 너무 서러워


유연한 척추로 도약하다 지쳐
수면만 바라보던 그녀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열면
죽은 영혼의 체취가 별빛처럼 쏟아져 내려
공간들은 비명 지르는 심장처럼 튕겨 나가고
끈적이는 시간들이 뺨에 달라붙는다


새털처럼 가벼워진 색채들이
사방으로 떨리며 흔들린다


알 수 없는 진실들은 천사들의 감옥에 갇히고
예언자들은 기린 다리를 가진 달팽이를
파피루스에 베껴 쓴다


불면의 밤들이 사방을 비비며 돌아다닐 때
이유 없이 누군가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야만적인 욕망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괜찮아


밤은 날마다 제 몸을 비틀며 춤추니까
춤추는 밤은 반드시 춤을 추어야 하니까


아픈 영혼들이 천지를 들쑤시고 나면


말 없는 생명 하나
비로소 미세하게 꿈틀대며 시작하겠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햇빛 속에서


2. 〈 지동설적 하루


햇빛은 너무 투명하여
차라리 잔인한 조폐국 같다


어젯밤 뺨을 할퀴던 영혼의 비명들을
황금빛 액체로 문질러
아침의 식탁을 주조한다


그녀는 상처 입은 과육처럼 빵을 자르고
고요를 마신다


중력은 탐욕스러운 연인처럼 발목을 핥지만
그녀는 안다


발밑의 지층이 맹렬히 회전하며
서로의 살을 깎아내는 축제임을


식탁 위 사과는
어제보다 더 붉게 놓여 있고


기린 다리를 꿈꾸던 달팽이의 자취는
창틀 위에서 은색 비단처럼 굳어 있다


천사들이 가둔 진실의 감옥
그 창살 사이로
부서진 빛이 스테인드글라스 파편처럼 떠다닌다


그녀는 고양이의 노란 안광을
서늘한 점막 한 겹으로 덮어 봉인한다


일상이라는 이름의 파피루스 위에서
사람들은 멈춘 대지의 박제를 믿으며
우아하게 안부를 묻는다


그러나 거짓 같은 지동설은
그녀의 핏줄 속에서만
검푸른 보석처럼 공전한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할
생의 화려한 발작


그녀는 비단 구두끈을 조이며
꿈틀대는 발가락의 비명을 짓누른다


문을 나서면
세상은 다시 견고한 정적의 가면을 쓰겠지만


등 뒤 문틈 사이로
아직 씻기지 않은 별의 체취가
희미한 향수처럼 배어 나온다


삶이 꿈을 탐하고
꿈이 다시 삶을 잉태하는
이 치명적인 유전의 궤도 위에서


그녀는 오늘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허구 속으로
보석처럼 투신한다


3. 〈 황혼의 파피루스


태양이 제 몸을 찢어
지평선에 붉은 잉크를 쏟을 때


세상의 윤곽들은
비로소 흐느끼기 시작한다


낮 동안 박제되었던 대지의 고요가 터지고


건물들은
거대한 짐승의 뼈대처럼
보라색 어둠 속으로 녹아내린다


그녀는 이제 안다


햇빛 속에서 꿈틀대던 그 생명이
사실은 이 붕괴를 기다려온 독이었음을


가로등이 하나둘 눈을 뜨면
천사들의 감옥 어딘가에서
열쇠 소리가 바람처럼 흔들린다


예언자들의 파피루스는
노을 속에서 다시 젖어
새로운 문장으로 태어난다


기린의 다리를 가진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
진주빛 안개가 천천히 올라온다


그녀의 핏줄 속에서 공전하던 검푸른 보석들이
피부를 뚫고 나와
밤의 모공마다 박힌다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삶인가


구두를 벗어던진 그녀의 발바닥 위로
자전하는 행성의 거친 떨림이 올라올 때
삶은 가장 화려한 꿈의 형식을 빌려 완성되고
꿈은 가장 생생한 삶의 촉감으로 눈을 뜬다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고 들어온 방 안


거울 속에는
고양이의 눈을 한 예언자가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서 있다


괜찮아
우리는 날마다
이 멸망 같은 축제를 반복하니까


지동설의 궤도 위에서
서로의 허구를 핥아주는 연인들이니까


창밖에는 수천 년 전의 네발짐승들이
별빛의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그녀는 스스로 파피루스가 되어
침대에 눕는다


가장 깊은 허구라는 이름의 진실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