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적 허기

essay

by 김준완


수탉이 울어 본 적이 있었던가.
이제 그 소리는 천지가 창조된 날만큼이나 까마득한 신화가 되었다.

기억 속의 수탉은 짐승이 아니다.
그것은 어둠의 가랑이를 찢고 들어오던 날카로운 빛의 파편이었고,
자궁 같은 방 안으로 투사되던 최초의 서늘한 조도였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들은 허기가 졌다.
위장의 굶주림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향해 입을 벌리는 시각적 갈증이었다.
가난은 방 안의 채도를 지우고, 모든 사물을 무채색 정물로 되돌려 놓았다.
그러나 수탉의 붉은 볏만은 선혈처럼 남아
아들의 안구에 깊게 박혔다.

죽음이 노을 진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안을 두려워하는 바깥이 각진 자음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공포를 견디는 동안, 생은 겨우 모음 몇 개를
거미의 집 어딘가에 숨겨 놓았다.

아들은 그 끈적이는 거미줄 사이에서
외계인만 아는 기하를 찾듯
어머니의 뼈마디 사이에 숨겨진 생의 수식을 읽어 내려갔다.

어머니의 손은 그 허기를 메우는 거푸집이었다.
가난은 어머니의 지문을 지우고,
그 자리에 굵은 뼈마디와 갈라진 살결의 지형도를 그려 넣었다.

수탉이 홰를 치며 새벽의 막을 쪼아댈 때마다,
어머니는 당신의 몸을 둥글게 말아
아들의 세계를 보수했다.
아들은 날것의 태반 냄새를 맡으며
생이 비단이 아니라 거친 삼베의 질감임을 본능으로 익혔다.

이제 수탉의 울음은 멸종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소리에 허기가 진다.
삶의 한복판에서 문득 마주하는 공허는
그 새벽의 붉은 소리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소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골격 깊은 곳에 화석처럼 박혀 있다는 것을.
내가 숨 쉴 때마다
내 안의 낡은 수탉이 아주 미세하게 홰를 치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 견딤의 힘으로 오늘을 산다.
수탉이 울고, 어머니가 기도하고,
가난이 빛나던 그 단단한 자궁의 기억으로.